▲책표지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일다
레이첼처럼 홀로 끙끙 앓는 경향은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일수록 특히 짙다. 보통 강간은 '낯선 사람'에게만 당한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또한 폭행이나 흉기가 동원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피해 여성의 트라우마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책에 따르면 '낯선 가해자'에게 당한 경우, 주변에서 보호받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미약하게나마 가질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 조금은 안전한 공간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가해자에게서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적다. 거기에다가 이런 유형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 즉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에 직면한다. 피해 여성을 더욱 고립시키고 힘들 게 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남기는 심리적 후유증은 또 있다. 피해 여성이 '남성'과의 '성관계'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건 전에는 '기쁨과 즐거움'이었을 행위가, 피해 이후에는 '두려움, 혐오, 분노의 대상'으로 변질된다.
아는 사람에게 강간 피해를 당한 '안나'는 책에서 "어떤 남자라도 저를 해치고 심지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곳이 위험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안나 뿐만 아니라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피해를 입은 많은 여성은 앞으로 또다시 남자와 사랑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어릴수록 이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강간은 없다책은 작가 티모시 베네크의 이 말을 인용하며 남성들의 인식 전환을 주장했다. "강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강간하는 남성들, 집단적인 파워를 지닌 남성들이다." 더군다나 '보통의 남자들'을 성적, 사회적, 도덕적 불량배로 환원시키는 행동에 우리 사회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남성들이 나서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 세상에 강간당할 만한 여성은 없다. 취했건 멀쩡하건 말이다. 여성의 "안 돼"는 말 그대로 "안 돼"를 의미한다. 언제든 상대방이 더 진행하길 원치 않는다면, 그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과의 적극적인 소통도 필요하다. '썸녀'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 소통하자. 여성의 전반적인 삶과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강간은 없다.
책에서 소개한 연구들에 따르면,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서 '울거나 말로 설득하는 방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한다. 대신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한다.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필요하다면 강한 공격으로 맞서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도 좋다. 그럼에도 상황이 악화됐다면,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라 강조한다.
남자가 당신을 강간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스스로를 질책하지 마라. 피해자로서 당신이 유일하게 책임져야 할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 당신이 강간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부상을 입거나 죽을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부디 살아 있으라. -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서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절대로 '그런 사건을 자신이 불러왔고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명심하라. 당신에게는 죄가 없음을,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일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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