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 같은 숨소리... 나만의 열대야 탈출법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전거여행16] 무더위를 잊게 하는 한강 라이딩

등록 2015.07.28 09:02수정 2015.07.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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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계절 여름이 오긴 왔나보다. 자전거 애호가들은 뜨거운 여름을 애마의 안장에서 느낀다. 햇볕에 뜨끈하게 달궈진 안장 덕에 안 그래도 더운 날 엉덩이 찜질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뙤약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밤에 자전거를 즐긴다. 해 저문 여름날 동네 강변에 나가보면 자전거 탄 이들이 한강 다리 아래로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지난 24일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씨는 후텁지근하고 눅진했다. 때마침 불금(불타는 금요일), 열대야를 페달질로 불태우며 야밤 자전거 달리기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한강 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서울 한강을 길게 한 바퀴 돌아 달렸다.


60km가 조금 넘는 심야의 강변 여행 길, 노을 지는 저녁녘 출발해 가랑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훌쩍 넘었지만 웬만한 열대야도 끄떡없을 내성이 생긴 것 같다.

페달질로 불태워버린 열대야

 여름 밤, 강변을 달리다보면 무더위는 어느 새 잊게 된다.
여름 밤, 강변을 달리다보면 무더위는 어느 새 잊게 된다. 김종성

저녁밥을 먹고도 오후 8시가 다 돼서야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한강을 곱게 물들이는 노을이 아름다워 노을공원까지 있는 한강 난지공원은 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맛집들과 함께 강가에 자리한 행주산성(경기도 고양시)이 지척이고, 풋풋한 강변 풍경이 남아있어 여러 한강 공원 가운데 손꼽히는 곳이다.

서해 바다가 있을 한강 하구로 저무는 부드럽고 고운 노을이 자전거 바퀴를 자꾸만 붙잡는다. 공기가 습하고 무거워서 그런지 조금 달렸다 싶었는데 팔뚝에 땀이 번들거리고 숨이 차다. "헉, 헉!" 일상에서 그랬다간 변태소리 들을 법한 거친 숨소리를 맘껏 뱉어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아니 돌렸다.

 한강과 노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한강 난지공원.
한강과 노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한강 난지공원. 김종성

 시민들에게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고마운 한강.
시민들에게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고마운 한강.김종성

숨차게 벌린 입 속으로 날벌레가 들어와 본의 아니게 미래의 식량 대안이라는 곤충식을 하게 된다. 참고로 보다 효율적인 자전거 페달 동작은 페달을 밟기보다 돌린다는 기분으로 하면 훨씬 빠르고 오래 달릴 수 있다.   


한강 망원지구의 성산대교 밑. 시원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서울시에서 야외극장을 만들어 놓아 시민들이 영화를 감상하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한강의 여러 다리 아랜 이렇게 야외극장이 들어서 있어 강변 밤 나들이 하기 좋다. 강변로 찻길에 차량들이 불금 정체로 인해 달리지 못하고 꽉 차 있다. 차들마다 뿜어대는 에어컨 열기가 후끈하다. 서울에 한강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싶다.

 한강가에서 자전거 산책 중인 효부 라이더 (지난 5월 촬영)
한강가에서 자전거 산책 중인 효부 라이더 (지난 5월 촬영)김종성

강변 자전거 도로 위, 천만 인구의 서울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자전거 애호가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사이클 선수처럼 쫄쫄이 자전거복장을 하고 쌩쌩 지나가는 자전거족도 눈길을 끌지만, 저녁마다 어머니를 뒤에 태우고 달리는 '효부 라이더'를 만나면 더욱 반갑다. 요즘엔 보기 드문 정경이라 속도를 줄이고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강바람을 일으켜주는 자전거 덕에 할머니의 표정이 상쾌해 보였다. 자전거 바구니엔 귀여운 강아지도 강바람을 쐬고 있었다. 차와 달리 누군가를 뒤에 태우면 더욱 인간미가 느껴지는 자전거,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가수 김창완 아저씨의 말마따나 "너는 든든한 친구, 나의 반려 기계"다.

밤에 새로 태어나는 한강 다리들

 여름 밤 한강에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자전거 라이더들.
여름 밤 한강에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자전거 라이더들.김종성

여름밤은 겨울눈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보단 차가 우선인 삭막한 한강다리, 강을 거대한 수조로 만든 칙칙한 콘크리트 둑, 녹조로 인해 진녹색으로 변해버린 강물 등 한강을 망친 인간의 허물이 도시의 야경으로 모두 가려졌다.

머리 위로 열차가 지나가며 내는 거친 숨소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한강철교 아래를 지나, 평범한 모양의 다리지만 밤엔 시원한 분수를 뿜는 반포대교에서 쉬어 갔다. 서울시 어느 공무원의 제안으로 설치했다는 한강다리 분수쇼는 여름 밤 강변의 명물이 되었다.

반포대교 밖에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다리 밑에 있는 잠수교에서 구경하는 것도 색다르다. 반포대교는 나이 지긋한 직원들이 지키고 있는 철길 건널목도 품고 있다. 열차가 지나갈 즈음 '땡땡땡' 향수를 부르는 요란한 경고음이 들리면서 낡은 건널목 철로 위로 빨간 테두리를 한 긴 차단봉이 내려온다. 역무원 아저씨 사이로 사람과 차들이 얌전히 기다리는 짧지만 고요한 풍경, 서울에서 보기 드문 이채로운 광경이 벌어진다.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한강 뚝섬 공원의 재밌는 건축물 자벌레.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한강 뚝섬 공원의 재밌는 건축물 자벌레.김종성

 한강다리 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시민들.
한강다리 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시민들. 김종성

서울 숲이 있는 성수대교 아래 한강 뚝섬 공원에도 '자벌레'라는 정말 벌레 모양을 한 대형 건축물이 있다. 한껏 움츠렸다 온몸을 쭉 뻗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벌레'를 형상화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SF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우주선 같이 보이기도 한다.

자벌레 몸통 속엔 한강 전망대, 갤러리, 작은 도서관 등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볼 만하다. 무난하고 보수적인 다리, 공공건물 똑같은 편의점 일색인 도시 강변에서 이런 건축물을 만나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차량보다 보행자와 자전거족을 더 우대하는 친인간적인 다리 광진교를 건너 한강 남단으로 넘어갔다. 한강을 감상하며 널찍한 보행로를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한강다리다. 광진교 중간에도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 바닥, 전망대와 미술관이 있다. 에어컨 시원한 작은 극장도 있어 동네 주민들이 찾아와 영화를 보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발을 저마다 뽐내며 강 야경에 한몫 하는 23개 한강 다리들은 컴컴한 밤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동대교, 청담대교, 천호대교를 지나면서 내가 어디쯤 왔는지 알게 된다.

바람을 일으키는 자전거, 풍륜  

 한강다리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좋은 안내자.
한강다리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좋은 안내자. 김종성

광진교를 건너 잠실, 반포, 여의도 한강 공원이 이어지는 한강 남단을 달렸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듬뿍 나는 날씨지만 희한하게 자전거 위에선 숨은 차지만 땀은 나지 않는다. 이게 다 자전거 바퀴가 일으키는 바람 덕분이다. 쉴 새 없이 페달질을 하면서 많은 땀이 나지만 강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리는 거다. 땀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생기는 상쾌한 기분은 덤이다. 이 기분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헬스장의 사이클, 러닝머신은 갑갑하게 느껴진다.

'자전거 여행' 책을 시리즈로 두 권이나 낼 정도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김훈 작가는 자신의 애마 자전거를 '풍륜'이라 이름 지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풍륜의 진가는 강변에서 마주친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절정을 맞는다.

중간 정도의 경사로가 파도처럼 한동안 계속 밀려왔다. 내리막길의 짜릿함과 상쾌함에 힘든 오르막길이 오히려 즐겁다. 지구에 태어나면서 숙명처럼 짊어진 중력, 내 두 다리 힘으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쾌감도 잊기 힘들다.    

강가에 수양버들이 운치 있게 서있는 반포 한강공원의 서래섬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하늘하늘한 나뭇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 사이로 거닐다 보면 무더위는 어느 새 잊게 될 것 같다. 늘 많은 시민들로 북적이는 한강 여의도 공원엔 강변 위에 띄운 작은 무대에서 재즈 콘서트까지 벌어지고 있어 축 처지는 여름밤을 신나게 해주었다.

 한강의 섬 선유도, 아름다운 선유봉이 있었던 자리에 정자가 있다.
한강의 섬 선유도, 아름다운 선유봉이 있었던 자리에 정자가 있다.김종성

양화대교 옆에 있는 한강의 명소 선유도는 원래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던 한강의 아름다운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홍수를 막고 길을 포장하기 위해 암석을 채취하면서 깎여나갔다.

해방을 맞이했으나 본래 모습을 되찾지 못하다가 결국 1962년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가 건설되면서 선유봉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겸재 정선의 옛 그림에도 나오는 아름다운 선유봉을 그리워하는 건지, 선유도에 들어서자 개구리·맹꽁이들의 짝을 찾는 합창소리가 밤하늘에 가득했다.

양화대교 위에 자리한 전망좋은 작은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한강 야밤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 했다. 아이스 커피 때문인지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몸 곳곳으로 퍼져갔다. 여름밤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열대야는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다.

* 주요 자전거 여행 길 : 한강 난지공원 - 반포대교(잠수교) - 광진교 - 서래섬 - 한강 여의도 공원 - 선유도 - 양화대교 위 카페
#자전거여행 #한강 자전거 라이딩 #반포대교 분수 #광진교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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