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장의 기억들
고상훈
날이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던 지난 7월, 어느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방학을 앞둔 시간. 우리 반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공유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리 반 교실 바닥에 잠시 잊힌 기억들을 꺼내줄 400여 장의 인화된 사진들을 뿌렸다. 짝사랑이 아닌 온 쪽의 사랑을 바라면서.
첫 번째 시간, 기억 더듬기"자, 이제 여기에 뿌려진 우리 반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 반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기억해볼 거야.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진들도 있을 테고, 다른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도 있을 거야. 기억을 꺼내는 이 시간은 자유야. 서로 사진을 보여줘도 괜찮고 혼자 사진을 바라보고 있어도 괜찮아. 서로를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기억을 꺼내기 위한 것이라면 뭐든 괜찮아."
400장의 수많은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 우리 겨울 옷 입을 때도 만났었어요!" "그럼, 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목도리도 했었지." "야! 너 반장 선거 나갔을 때다. 이때 나는 너 뽑았다.""아. 이때 괜히 나갔어. 나 2학기에 반장할 거야.""유언장 쓸 때다! 이때 너 진짜 많이 울었었는데.""야, 너는 안 울었냐! 그때, 다 울었지 뭐.""이게 우리 반이 했던 첫 실험이야. 아직도 기억나. 우리만 망했거든.""이야, 그걸 다 기억해? 대박."먼지가 쌓여가던 기억들이 활력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400여 장의 기억들을 들여다보며 서로 웃고 떠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나에게 쪼르르 가져오면서 그동안의 기억들을 다 같이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참 좋았다. 은근슬쩍 나도 바닥에 앉아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두 번째 시간, 기억의 조각보 만들기"이제까지 기억을 찾는 시간이었다면, 이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기억들을 골라보는 시간이야. 이 많은 사진들 중에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네 장만 골라서 가지고 올 거야. 그리고 그 네 장의 사진은 우리가 이제 만들 기억의 조각보의 재료가 될 거야."시작! 이라고 외친 순간, 마치 급식실로 달려가는 중고등학생들처럼 아이들이 사진으로 쪼르르 달려들었다. 네 장의 기억들은 기억의 조각보 재료로 쓰일 계획이었다. 자신이 고른 기억들을 한 손에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엽다. 나를 마지막으로 우리 반의 모든 친구들이 기억을 골랐다.
밀어두었던 책상들을 다시 원위치로 옮기고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고른 네 장의 사진들로 기억의 조각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조각보가 거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네 조각의 사진들을 이어붙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고른 기억들을 하나로 이어보는 활동이 한 학기 동안의 기억들을 더 짙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