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 미국이지만 안 돼" 발끈한 한국 개신교

리퍼트부터 오바마, 긴즈버그까지... 한국 개신교와 미국의 애증관계

등록 2015.08.07 18:05수정 2015.08.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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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초청으로 지난 3일 방한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4박 5일 일정을 마치고 오늘(7일) 출국한다. 긴즈버그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방문해 양승태 대법원장과 만났고, 5일 오전에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을 면담했다.

그리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4일 저녁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안에서 국내 1호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영화감독)·김승환(영화사 대표) 부부와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 그리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국내 대표적인 성 소수자들과 만찬 간담회를 했다.

한국 성소수자들과 미국 연방대법관의 만남 방한중인 미국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운데)가 4일 저녁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성소수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하리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만나 만찬을 했다. 만찬을 마친 김조광수 감독과 임태훈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과 만찬 내용을 공개했다.
한국 성소수자들과 미국 연방대법관의 만남방한중인 미국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운데)가 4일 저녁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성소수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하리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만나 만찬을 했다. 만찬을 마친 김조광수 감독과 임태훈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과 만찬 내용을 공개했다. 페이스북

5일 오후에도 긴즈버그는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대법원 대강당 강연회에서 최근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과거 동성 결혼 자체가 불법인 때가 있었고 이후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으며, 동성애가 주거·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금지 조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는 등 동성애 관련 문제는 여러 단계를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그 사이에 각 주의 입법 과정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여러 법원을 거치면서 국민의 태도도 바뀌었다"며 "미국 대다수의 국민은 동성 결혼에 동의하고 있고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다른 법원에서 좋은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연방대법원도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긴즈버그의 방한 활동에 우려 표한 한국 개신교 단체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긴즈버그는 그동안 소수자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3년 대법관 가운데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주례를 맡아서 화제가 됐고, 올해 6월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한국에 와서 현재 법원에 동성결혼을 인정해 달라며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낸 당사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를 만나고, 성 소수자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계속 이어나가자 한국 개신교 단체들이 즉각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38개 교단 협의체인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 목사)은 5일 <미국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우려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그가 한국에 와서까지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며 소송 중인 김조광수-김승환씨를 만나고 트랜스젠더를 초청해 격려하는 등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므로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 역시 이날 <미국은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를 강요하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긴즈버그 미 대법관은 동성애 전도사인가?'라며 "노골적인 성소수자 지지활동과 법조인들에 대한 소수자 보호 인권운동 강연은 법관들의 성윤리 의식마저 왜곡시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언론회는 "미국이 우리의 우방국가요, 혈맹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와 문화가 있고, 공유할 수 없는 문화와 가치도 있다"며,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충고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동성애 조장 확산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강연을 중지해주기 바란다. 미국의 타락한 가치를 대한민국에 강요하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정적 계기는 퀴어문화축제와 동성결혼 합법화

'동성결혼 허용 기념' 백악관 트위터 사진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찬성 5, 반대 4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하자 미 백악관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백악관 그림에 동성애 지지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덧입혀 '트위터' 표지사진으로 만들었다.
'동성결혼 허용 기념' 백악관 트위터 사진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찬성 5, 반대 4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하자 미 백악관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백악관 그림에 동성애 지지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덧입혀 '트위터' 표지사진으로 만들었다.연합뉴스

사실, 한국 개신교가 이렇게 대놓고 미국을 비판하는 모습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찾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 개신교는 상당히 친미적인 성향이 강했다. 기원은 한반도에 개신교가 처음 전해진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1890년대부터 그 후 100여 년 동안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의 90%는 다 미국인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 당국은 이들에게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재산을 제공했고, 미국 선교사들은 학교가 부족했던 당시에 근대적 고등교육의 최전선을 담당한 '미션스쿨'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소련과 경쟁관계에 있었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가 공산주의를 피해 북한에서 월남해 남한 개신교의 주류가 된 신도들은 특히 반공의식이 강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흔히 볼 수 있는 친미, 반북의 한국 개신교가 시작된 셈이다.

최근까지도 한국 개신교는 미국과의 혈맹을 무척 중시했다. 이는 지난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 참석 도중 피습 당한 주한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를 향한 일부 개신교인들의 쾌유기원 예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외신에도 보도된 바 대로, 이들은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직후 광화문에서 한복을 입고 북을 치며 부채춤을 췄으며, 그 앞에서 대형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흔들었다.

쾌유기원 예배에 참석한 개신교인들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발레를 추기도 했으며, 가야금 반주에 맞춰 민요 찬양을 하고 꽃바구니도 흔들었다. 이후 몇 시간에 걸쳐 주한 미국대사관 주변에서 수차례 관련 집회와 성명서 발표가 잇따랐고, 이들은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 "용감한 마크 리퍼트! 건강하게 일어나셔요", "한미 관계는 굳건하다"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다.

그리고 6월 9일,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을 앞두고 이들은 다시 서울시청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도 한복과 하얀 원피스· 꽹과리와 북·태극기와 십자가·부채춤과 발레가 그대로 등장했다. 일부 개신교인들의 강한 반대 속에서도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은 어쨌든 열렸고, 이 자리에는 (이들이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쳤던 마크 리퍼트의)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공사 '로버트 오그번'이 참석해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마침내 2015년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결국 미 전역에서 동성결혼은 합법화됐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이제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할 권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곧이어 6월 28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이날도 개신교 단체들은 행사장 주변에서 반대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주한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도 직접 참석해 조직위 측에 지지와 응원의 뜻을 전했다.

오바마 비판하고 장기 독재자 우간다 찬양하게 된 한국 개신교

퀴어문화축제 방문한 리퍼트 주한 미대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가 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열린 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해 주한미대사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방문한 리퍼트 주한 미대사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가 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열린 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해 주한미대사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희훈

앞서 한국을 방문 중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행보를 비판하는 한국 개신교 단체들의 성명을 잠깐 살펴봤지만,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미국을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전 총회장 최낙중 목사는 지난 6월 28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본부장 소강석 목사)가 개최한 '동성애조장 중단촉구 한국교회교단 연합예배·국민대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2014년) 당시 무세베니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만일 반동성애법을 제정하면 연 4억 달러씩 하던 원조를 끊겠다'고 경고한 상황에서도 '우간다를 지켜주고 구원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그해 10월 동성애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최 목사는 "무세베니 대통령은 동성애로 인해 가정, 사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목격했다"며,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의 반동성애법 제정을 극찬했다. 한국 개신교의 유명 목사가 수많은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고 우간다 대통령을 찬양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은 1986년 쿠데타를 일으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장기 독재자다. 그는 집권 후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단행했고, 이 때문에 우간다는 무려 20년 넘게 격렬한 내전에 휩싸였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통계에 따르면 우간다 정부군과 반군간 전투로 인해 무고한 주민 3만여 명이 숨졌으며, 200여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개신교 목사가 반동성애법을 제정했다는 이유로 무세베니 대통령을 극찬했는데, 실제로 무세베니의 독재를 겪으며 가정, 사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우간다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프리카연합' 주최로 열린 회의에 참석했고(이 정상회담 자리에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있었다), 7월 28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평생 대통령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피와 새로운 생각이 돌아야 여러분의 나라가 더 번창할 수 있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피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전쟁 당시의 관점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앞으로 미국과의 애증관계를 도대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미국 #친미 #동성애 #혈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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