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월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국민안전처 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회의에서 관련 부처의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재난안전처를 만들었지만, 올해 메르스 파동 때도 '재난 컨트롤타워' 논란은 계속됐다.
이 정부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입장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소신'이다. (전통적 안보개념에 재난관리까지 포함하는) 포괄안보가 아니라 전통적인 '군사안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남북대치 상황에서 청와대NSC는 국가안보에 집중해야"지난 해 4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청와대의 안보·통일·국방의 컨트롤타워"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어 5월에도 '국민안전처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는 논거'라는 제목의 설명자료에서 '청와대 (NSC, 국가안보실)에 재난 컨트롤타워 설치 곤란 이유'에 대해 '남북대치상황, 북핵위협 등 안보상황을 감안할 때 NSC는 국가안보에 집중 필요'와 '국가안보·재난관리 통합 수행시 안보와 재난의 전문성 차이로 시너지 효과가 미흡하고, 오히려 재난분야가 위축될 우려(안보적 위기상황에서 대형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분산될 가능성)'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소신으로 만든 '국민안전처'는 메르스 사태 때 별다른 역할을 못해, 여당인 새누리당으로부터도 비판받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그렇다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안보·통일·국방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8월 4일과 5일 이틀 상황만 짚어봐도 이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이희호 평양 도착 30분 뒤, 북에 고위급회담 제안정부는 지난 5일 비밀리에 판문점연락관을 통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이희호 이사장이 평양에 도착한 30분 뒤인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언제 어떤 귀신이 끼어들지 모르는' 대북제안은 그 성격상 사전정지 작업이 중요하다. 미리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놔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1차 남북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된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을 하기 전날 북한에 그 전문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번에 박근혜 정부는 이런 사전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던진 대북제안에 '이희호 방북단'은 당황했고, 북한은 '분개'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의 방북에 대해 '개인 차원의 방북'이며 '대북 메시지는 없다'고 공표해놓고는, 그의 방북 당일 별도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은, 아주 적은 것이라도 DJ 세력이 남북관계의 결실을 끌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속 좁은 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대북 접촉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확실히 분리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 이사장과의 조율을 통해 북한에 사전 설명하게 한 뒤 회담제안을 했다면 북한이 서한 접수조차 거부하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부-민간 역할 분리'가 그렇게 확고한 원칙이라면, 이 이사장 귀환 뒤에 제안하는 것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다.
4일 오전 7시 35분 지뢰 폭발,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고위급 회담 제안'파주 목함지뢰 사건'과 연결해 보면 더 의아하다. 지뢰 두 발이 터진 시각은 4일 오전 7시35분과 40분이었다.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5일 오전 11시 30분까지, 폭발물 정밀 분석까지는 어려웠겠지만, 군사분계선 통문 지점이라는 점에서 북한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DMZ 인근 접경지역에서는 매설돼 있던 지뢰가 폭우에 휩쓸려 도로로 유출되면서 사고가 발생하곤 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럴 가능성도 없는 위치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청와대 통일비서관 출신으로 통일부 장관 시절 NSC상임위원장을 겸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부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며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정세에서 '전투적인 북한'은 상수다. 때문에 북한을 욕하는데 핏대를 올리는 것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DMZ 내 북한군의 수상한 징후는 작년 말부터 포착돼 있었고, 최윤희 합참의장은 2013년 10월 취임 뒤 여러 차례 "북한의 다음 도발은 휴전선 부근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음에도, 이번 사건을 막지 못했다.
'북 도발시 원점타격'을 강조해온 대장 출신 인사들이 책임을 맡고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안보' 강조가 낯부끄러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때 북한 국방위원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측근들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김양건 당 비서를 인천에 보내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등을 만나게 했을 때가 남북관계 기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청와대는 그런 호기를 일부 탈북자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조'함으로써 날려버렸다.
박 대통령 "분단 70주년 맞아 통일기반 조성" 공언 공염불 돼군사적 대응으로만 하는 안보는 그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북한 미사일에 대비하겠다고 사드(THAAD, 종심단계 고고도미사일) 체계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데, 정작 북한은 단숨에 이를 무력화하는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나서는 식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도발 의사를 약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군출신 안보·통일·국방 컨트롤타워 인사들은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
군과 청와대에 있는 그들의 군 선배들은, 천안함 사건 때처럼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통해 '경계 실패'의 책임을 넘어가려 할 것이다. '통일 대박'은 커녕, 오히려 이명박 정부때도 설치만 해놓고 틀지 않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이 11년 만에 재개되는 상황이 됐다.
확성기 방송을 필두로 한 대북심리전 재개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를 급격하게 고조시키게 될 것이다. 특히 서해가 그렇다. 2004년 6월에 남측이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었다. 1999년과 2002년에 1, 2차 연평해전을 겪은 상황에서, 서해상 충돌을 막기 위한 '남북 함정간 무선 교신'합의에 대한 반대급부였던 것이다.
"분단 70주년을 맞아 통일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은 확실하게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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