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외벽에 서명문 태극기 든 김구 선생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외벽에 태극기를 든 김구 선생의 사진이 걸려있다.
유성호
반면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기간은 무려 36년이다. 프랑스의 4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길고 긴 기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민족을 배반한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한 사례는 모두 얼마나 될까. 아니,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부끄럽게도 '단 한 명도' 없다. 1949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결국 '악질 친일파'로 체포되었던 자들은 모두 무사히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이 나라 민족 정기 수준이다.
그러다가 지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2005년 만들어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반민특위 해체로 중단된 친일파들의 처벌을 위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친일파들의 이름만이라도 후세의 교훈으로 남기자는 노력 끝에 모두 1005명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전부일까.
프랑스는 나치 지배 기간 4년 동안 무려 10만 명을 나치 부역의 죄로 처벌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일제 36년 치하 고작 1000명 남짓만 민족을 배반했을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민족처럼 '위대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기에 더욱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왜 고작 1005명만 기록으로 남았을까. 부끄러운 일은 이 1000명 남짓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남기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청난 저항과 반발이 이어졌다.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는 이 나라 현실에서 자기 조상의 친일 행적을 감추려는 저항이었다.
더구나 내가 4년간 조사관으로 일한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 행위를 대가로 취득한 친일 재산을 국가 귀속한 친일파 숫자를 밝히면 더욱 부끄럽다. 그 숫자, 168명이었다. 이게 이 나라의 오늘날 민족 정기 수준이다. 이 법안 제정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수정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처럼 미약한 조사 권한으로 남게 된 것이다.
황당한 주장 : 생계형 친일? 일제시대에 살아남은 것도 친일?그런데 이 초라한 단죄마저도 '너무 과격하다'며 비판하는 세력이 있다. '생계형 친일' 운운하면서 "이런 식이라면 일제 시대에 살아남은 것도 친일파라고 처벌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공격을 한다. 어처구니 없는 반발이고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데도 '광복 70년'을 이벤트로 넘어가려 하는가. 비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이유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말했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 반역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을 단합할 수 있다."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분열되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그 이유, 바로 샤를 드골 대통령의 명언에서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를 위한 제대로 된 예우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서 어찌 국민이 단합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요구한다. 친일파를 청산하라.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한없이 예우하라. 그래야 진짜 광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나는 소리 높여 외친다. 광복 70년, 친일파를 청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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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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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에 겨우 남긴 숫자 : 1005명과 16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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