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외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제작진이 자기검열을 한다는 SBS 전 PD의 양심 고백도 나왔다. 사진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기형 경희대 교수,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 정철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장(PD).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의 내부 고발자였던 류 교수는 언론인들의 역량 강화를 대안으로 꼽았다.
유성애
1.1%. 1983년부터 이어져 온 KBS의 대표 탐사보도 프로그램 <추적 60분>이 지난 6월 3일 받아든, 이른바 '굴욕' 시청률이다(전국 기준, 닐슨코리아 조사). 30년 만의 자체 최저 시청률 기록, 사회 비판적 소재 회피 등 최근 PD저널리즘이 보이는 탐사보도의 몰락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탐사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경제위기 후 10여 년이 PD저널리즘의 전성기였다면 그 이후는 극도의 통제를 받는 시련기였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파동은 PD저널리즘은 물론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 차원 통제가 노골화된 직접적 계기"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와 MBC <PD수첩>의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사기' 보도 10주년을 맞이해 한국PD연합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주최했다. 이날 홍성일 언론학 박사(서강대 강사)는 '굴욕 시청률'을 언급하면서 "탐사저널리즘은 국가와 공영방송의 밀착관계가 만든, 깨지기 쉬운 온실 속에서 자란 것 같다"고 지적했다.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에도 '영광의 시절'은 있었다. 그러나 황우석 연구 조작과 스폰서 검사, 4대강 이슈 등 보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사회 비판적 소재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날 발제자들은 공통으로 PD저널리즘의 위기를 지적하는 한편, 그 원인으로 사내외 정치적 압박으로 인한 제작 자율성 축소, 친정권 인사 등 공영방송의 왜곡된 지배 구조를 꼽았다.
원 교수는 관련해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후 나온 촛불집회가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했고, PD수첩 또한 오랜 법정 소송으로 지쳐갔다"며 "또 MBC는 물론 KBS까지 친정권 이사로 이사·경영진이 꾸려지면서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다, 천안함·4대강 사업과 같이 정권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결부된 아이템은 금기시됐다"고 비판했다.
실제 황우석 보도 당시 제작을 담당했던 최승호 전 <PD수첩> PD(현 뉴스타파 앵커)도 같은 지적을 했다. 그는 "당시 용산 참사, 민간인 사찰 등 당대 현안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PD수첩이 꺾인 계기는 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김재철 사장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영진이 "PD수첩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설명이다.
지상파 PD의 양심 고백 "정치적인 부담 탓에 자기 검열하기도" 토론회에서는 9월 5일 방송 1000회를 맞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된 논의도 활발하게 오갔다.
SBS 시청자위원으로 2년간 활동한 이기형 경희대 교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 "정의와 공정성, 인권 등 소재를 감각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내 방송 1000회를 맞이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면서도 "민감한 정치사회 쟁점을 다루지 않거나, 공분에 기반을 둔 미시적 주제들만 다루는 것은 한계"라고 비판했다.
사내외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제작진이 자기검열을 한다는 SBS 전 PD의 양심 고백도 나왔다. 이 교수가 연구 중 만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제작 담당 PD는 그에게 "회사가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정치적 부담은 연출자들에게 전달되기도 한다"며 "자기 검열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광고주와 권력의 압력, 제작진의 자기 검열을 극복하는 게 탐사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철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장(PD)은 이와 관련 "뼈아픈 지적"이라며 수긍했다. 그는 그러나 '민감한 정치 현안은 피해간다'는 지적에 대해 "기본 원칙은 늘 같다, 대중을 설득할 자료가 있는지가 그것"라며 "고 유병언 회장 시신의 진위나 국정원 해킹에 대해서도 검토했지만, '내부 제보 없이는 보도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소재를 검열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쇠락해가는 탐사저널리즘을 살릴 해법은 있을까. 최 전 PD는 "계기가 간단한 만큼 문제 해답도 간단하다"며 공영방송의 왜곡된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스타파> 등 새로운 매체도 대안이겠지만, 공영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며 "(경영진 선임 등)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 개선과 구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추적 60분>을 태동기 때부터 지켜봤다는 장해랑 전 KBS PD(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경영진·이사회 등 사내 압박, 그리고 최소 3년~5년이 걸리는 '소송 재갈'을 제작진에게 물리는 현 구조로 인해 현업자들은 전투 같은 제작환경에 처했다"며 "이런 고착화된 구조를 깨지 않으면 탐사보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의 내부 고발자였던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는 언론인들의 역량 강화를 대안으로 꼽았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이 드러나기 어려운 구조인 건 마찬가지"라며 "전공 분야 등 (언론인) 개인적으로라도 제보자를 견뎌줄 만한 역량을 마련했으면 한다, 이런 사실이 잠재적 제보자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는 9월 5일 1000회 방송에서 최근 논란이 된 '조현아 땅콩 회항' 등 재벌 2세 및 자본권력의 특혜를 소재로 3부작을 보도할 예정이다. 정철원 PD는 관련해 "최근 '갑질'에 대한 공분과 기대가 많은 것 같다"며 "자본권력에 대한 특권·특혜를 주제로 별도 PD들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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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몰락, MB 때부터... PD들, 자기검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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