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의 시계를 2000년 6월로 돌려라

긴장감 높아지고 있는 DMZ가 불러낸 16년 전 기억

등록 2015.08.21 18:31수정 2015.08.2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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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북한이 서부전선에서 우리군의 대북확성기를 목표로 사격을 가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북한은 그 뒤 48시간 이내에 대북 심리전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노라고 위협했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군사적 대응과 함께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지난 4일 DMZ에서 벌어졌던 지뢰 폭발 사건에 따른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노라고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만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국지전이 벌어지거나 지금과 같이 위기만 고조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북한보다 남한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정성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고 이는 안 그래도 바닥을 기고 있는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 아닌가.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DMZ에 우리의 장병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된다면 과연 그들의 안위는 지켜질 수 있을까? 그들은 현재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어쩔 수 없는 걸까? 군사적 긴장을 최대한 낮춰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본 기자는 군생활을 하면서 극적인 경험을 한 바 있다.

어서 빨리 통문을 빠져나오라

16년 전 내가 군복무를 한 곳은 지난 4일 지뢰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당시 난 1사단 산하 연대의 수색중대 포반 소속이었는데, 우리의 임무 중 하나는 타 소대의 DMZ의 수색, 매복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군대가 실제 주어진 임무처럼 돌아가는 곳인가. 수색중대 포반이 하는 일은 수색, 매복 지원보다 부대 내 위병소 근무와 작업, 그리고 DMZ에서의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나 제초작업, 특히 DMZ 내의 제초작업이었다. 무슨 놈의 풀이 하루 새에 그리 많이 자라는지.


99년 여름 어느 날. 그날도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DMZ 내에 들어와 낫과 제초기로 풀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적이 침입했을 때 GP에 있는 대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갑자기 소대장이 무선으로 전달받은 명령을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무전을 끊은 소대장은 심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추진철책 너머 1~2m 앞에 있는 원형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기어가면서 그 속에 있는 풀들도 낫으로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GP에서 경계를 설 때 전방이 잘 보이지 않는다나.


우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추진철책을 넘어가라니. 예전에 북한군이 넘어와 매복 서는 우리 장병들의 코와 귀를 자꾸 베고 가서 만들었다는 전설의 추진철책 아니던가. 문제는 추진철책 북쪽으로는 어디에 지뢰가 묻혀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북이나 남이나 MDL(휴전선, 나무 목책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근처에 왕창 매설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가을쯤 되면 남과 북은 DMZ 시계 확보를 위해 갈대 숲을 태우는데 그때 유실되었던 지뢰들이 폭죽 터지듯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추진철책을 넘어가서 작업하라고? 게다가 2개월 전(99년 6월)에는 연평도해전이 터져서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고 우리 GP에서는 계속해서 '소도 웃는 김정일 이야기' 하면서 대북방송을 자꾸 떠들어대고 있는데?

그러나 별 수 있는가. 군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모든 걸 체념하고 추진철책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GP에서 근무하는 하사관 하나가 열쇠를 찰랑찰랑 거리며 나오더니 통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더니 우리가 모두 들어가자 다시 통문을 닫고 열쇠를 잠갔다. 혹여나 북한군이 내려올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나.

참담했다. 지뢰밭도 지뢰밭이었지만 우리가 넘어온 뒤 추진철책 잠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GP가 과연 우리를 지킬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이곳은(이번에 사고가 난 지점) 북한 소초와 우리 GP가 가장 가까워 그들 소초에서 병사들끼리 구타하는 것도 다 보이는 장소인데, 이건 진짜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내리쬐는 8월의 태양볕. 원형 철조망 안에 들어가 무릎으로 기어가며 낫으로 풀을 베고 있는데 갑자기 통신병이 비상이라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GP에서 무전 오길 북한 소초에서 우리를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심상치 않으니 서둘러 추진철책을 넘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북쪽을 쳐다보니 저들이 망원경으로 우리를 지켜보며 손가락질 하는 것이 육안으로도 다 보였다. 굳이 정밀 조준을 하지 않아도 왠만하면 모두 맞출 수 있는 거리. 우리는 기겁을 했고 통문 앞으로 내달렸다. 통문 앞에서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는데 열쇠를 여는 하사관의 손놀림이 왜 그리 느리던지.

다행히 이후 북한군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몇 번 반복해 가며 원형철책의 풀들을 결국 모두 제거했다. 복귀하는 길. 언제나 그랬듯 피곤한 발걸음이었지만 그날만은 피곤함보다 안도감이 앞섰다. 괜히 DMZ가 아니구나.

6.15 정상회담 뒤의 DMZ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우리는 또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뜨거운 여름, 이름 모를 풀들은 여지없이 자랐고, 우리는 또다시 추진철책을 넘으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채였다.

또다시 열리는 통문. 그러나 기분은 1년 전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번에는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보다는 이 많은 양의 풀들을 언제 다 제거하냐는 짜증이 앞서 있었다. 이는 결국 두 달 전에 있었던 2000년 6.15 정상회담 덕분이었는데, 남북의 정상도 만나는 이때, 설마 저들이 우리를 쏘겠냐는 낙관론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DMZ는 1년 전과 비교해서 딴판이었다. 우선 주간에 작업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어야만 했던 대북방송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며, 밤만 되면 삐라가 가득 들은 풍선을 쏘아올린다며 시끄럽게 떠들던 심리전 부대 역시 조용해졌다. 다만 대북방송을 진행하던, 목소리가 예쁜 여군 하사관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긴 했지만 DMZ에서 비교적 마음 놓고, 훨씬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거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결국 우리는 1년 전과 비교하여 훨씬 빠르게 DMZ 내 제초작업을 끝냈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가야 했던 DMZ였건만, 2000년 6월 이후의 DMZ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의 일상적인 군복무가 이뤄지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DMZ

a  (동두천=연합뉴스) 북한군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 사건에 대응해 한미 양국 군이 연합작전체제를 가동한 것으로 확인된 21일 긴급 지원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 지역의 한 미군부대에서 기동장비들이 대기하고 있다.

(동두천=연합뉴스) 북한군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 사건에 대응해 한미 양국 군이 연합작전체제를 가동한 것으로 확인된 21일 긴급 지원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 지역의 한 미군부대에서 기동장비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일이 있고 난 15년 후. 현재 DMZ는 1999년도의 그곳으로 돌아가 있다. MB정권 이후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왔으며, 지난 4일 지뢰 폭발 이후 남한의 대북방송 재개, 북한의 사격, 남한의 대응사격으로 군사적 긴장은 높아져 가고 있다.

혹자들은 설마 남과 북이 공멸인 걸 알면서도 서로 전쟁을 벌이겠냐고 현재의 상황을 무시하지만, 이는 100% 확신할 수 없다. 전면전으로 확전만 안 된다면 남북 모두 국지전을 통해 얻는 이익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러모로 흔들리는 김정은 체제를 외부의 적을 통해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며, 남한 정권 역시 북한문제를 통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당장 지난 4일에 있었던 지뢰 폭발은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국정원 해킹 등과 같은 이슈를 모두 빨아들이지 않았던가.

따라서 현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경제적으로 부담만 최소화할 수 있다면 북한과의 갈등을 부추기지는 않더라도 일부러 해결하지 않을 수 있다. 현 정권의 몇몇 실세들은 실제로 과거 '총풍'과 같은 사건들을 통해 쏠쏠히 재미를 본 전력도 있는 바, 이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할지라도 군사적 충돌은 막아야 한다. 어쨌든 그것은 전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며, 또한 애꿎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오늘, DMZ에서 근무하고 있을 후배 장병들을 떠올려본다. 아마 그들은 내가 16년 전 그랬던 것처럼 머리카락을 일부 자르고, 손톱, 발톱을 깎은 뒤 유서를 쓰고 실탄을 챙긴 뒤 수색 매복을 하게 될 것이다. 밤 새 뜬눈으로 총구만을 바라볼 것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그런 상태로 아주 오랜 기간 5분 대기를 할 것이다. 모두가 우리의 아들이고 동생이고 친구이다.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다시 2000년 6월 이후의 DMZ가 되돌아오길 바란다. 국가의 의무는 모든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부디 정부는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를.
#북한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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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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