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없어지면 지구에서도 사라집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③] 빙하기 유산 간직한 설악산

등록 2015.08.26 17:49수정 2015.08.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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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이 오색에서 설악산 정상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놓으려고 환경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미 2012년, 2013년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환경부가 정한 케이블카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아 실패했던 사업이다. 달라진 점은 이번엔 박근혜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산지관광사업의 일환이라는 것.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의 첫 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이번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타당한지를 살펴보았다. - 기자 말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지주가 들어서는 자리의 수목들이다. 벌목으로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양양군 "식생들 20년 수령" vs. 환경단체 조사결과 80~226년생

식생수령 환경단체가 조사한 케이블카 예정지의 수령
식생수령환경단체가 조사한 케이블카 예정지의 수령녹색연합

강원도 양양군은 케이블카가 들어서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양양군은 "식생들이 20년 정도의 수령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양양군은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지역이 아고산대가 아니라고 한다. 한마디로 보전할 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국립공원 설악산에 있는 나무가 20년생이다'란 건 누가 들어도 납득이 안 되는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20년 전에 큰 불이라도 났든가 고목이 마구잡이로 벌목되었다는 건데 국립공원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환경단체의 현장조사결과는 양양군의 주장과 매우 다르다. 중간지주 5번부터 상부 탐방로까지 나무 수령이 80년에서 226년 정도까지라는 걸 확인했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중간정도 굵기의 나무를 선택해 수령을 측정한 결과다. 이를 고려한다면, 200년이 훨씬 넘는 나무들도 많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양양군 자료와 무려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수령이 226년이나 되는 잣나무는 조선시대 정조임금의 시기에 싹을 틔운 나무다. 이 나무도 양양군의 부실조사로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면 베어질 위기에 처한다. 

또한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에는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평가기준에 따른 희귀식물 중 가까운 미래에 자생지에서 매우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는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되는 '개회향, 눈향나무', 취약종(VU)인 '백작약, 세잎승마, 주목', 현 시점에서 멸종 위험도는 작지만 분포조건 변화에 따라 멸종위기로 이행할 수 있는 약관심종(LC)인 금강애기나리, 금마타리, 등칡, 만병초, 연영초, 정향나무, 참배암차즈기, 태백제비꽃 등 국제적 멸종위기 식물이 분포해 있다.

한 번 훼손되면 복원 어려운 '빙하기의 유산 아고산대'


무엇보다 양양군의 주장과는 달리, 이 지역은 아고산대에 해당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2012)에서 작성한 '제1차 설악산국립공원 보전·관리계획'에 따르면 6번 지주부터, 상부가이드타워, 상부정류장, 탐방로 등이 모두 아고산대에 있다.

아고산대는 빙하기의 유산이라고 불린다. 빙하기 때 북방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수종들이 이후 온난화에서도 살아남은 곳으로 우리나라에선 백두대간과 한라산 등의 일부 고지대에만 분포해 있다. 아고산대는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고 최근의 지구온난화 위협에서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할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아고산대 여부는 국립공원위원회가 검토하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다. 환경부는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검토기준'과 '자연공원 삭도 설치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케이블카 사업을 심의하게 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원생림, 극상림, 아고산, 고산대 등을 회피하도록 되어 있다.

아고산대 설악산국립공원 아고산식생대와 케이블카 예정지 현황
아고산대설악산국립공원 아고산식생대와 케이블카 예정지 현황국립공원관리공단

양양군도 케이블카 대상지가 아고산대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상의 일부인 상부정류장 전망산책로가 아고산대에 입지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공원계획변경(안)' 293쪽) 5번 지주 주변에 아고산대 식생인 분비나무 군락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자연환경영향검토서' 172쪽). 하지만 두꺼운 보고서 한 구석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 뿐, 종합결론을 제시하는 부분에는 쏙 빠져있다.

케이블카를 건설하느라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외래식물이 유입될 수 있다. 양양군도 이러한 위험을 보고서에 적고 있다. 외래종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그 험난한 조건을 뚫고 살아남은 한반도 고유의 생태계가 외래식물로 망가진다면, 이것은 한국 국립공원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설악산 권금성엔 1970년부터 운행되고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 권금성 일대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 산이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생기기 전 권금성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권금성에도 '숲'이 있었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에 숲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의 케이블카 정류장이 놓이는 '끝청'의 미래는 어쩌면 현재의 권금성일지 모른다.

설악산은 그곳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에게는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설악산의 생명에겐 그곳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 빙하기 시대부터 그곳에 살았던 생명들이 있다. 그렇다면 설악산의 주인은 누구일까? 설악산을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희귀식물들, 한반도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식물들을 대신할 가치가 과연 케이블카에 있을까? 답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케이블카는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아고산대를 피해서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오색케이블카 설치 여부를 결정하는 국립공원위원회가 명심해야 할 기준이다.

[관련 기사]

① 당신이 몰랐던 설악산의 특별함
② 서식지 아닌 이동통로? 카메라에 찍힌 건 뭐지

설악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들어설 끝청에서 바라 본 설악산. 이 모습과 이곳 생명들이 사라질 위기다.
설악산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들어설 끝청에서 바라 본 설악산. 이 모습과 이곳 생명들이 사라질 위기다.녹색연합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황인철 님은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아고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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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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