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호른야생화가 만발한 수네가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본 모습
임재만
다시 수네가에서 케이블을 타고 블라우허드로 올라갔다. 케이블 요금은 후불이다. 마터호른은 여전히 눈앞에 우뚝 솟아 있다. 어디서 보아도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하이킹을 위해 산위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하얗게 덮여 있다. 스키나 썰매를 타도 될 것 같다. 만년설 아래로는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나무가 하나도 없어 여러 갈래의 산길이 지도처럼 펼쳐져 보인다. 산길 주변에는 군데군데 산중 호수도 있다. 멀리서 푸른 물빛이 유혹을 한다. 그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 없는 산길은 춥지도 덮지도 않다. 하이킹하기 딱 좋은 날씨다. 햇볕이 강해 얼굴이 따가울 뿐이다. 바위가 많은 산길에는 지루하지 않게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곱게 피어있다. 하얀색 꽃도 있고 노란색과 분홍색 꽃들도 많다. 그들은 같은 색 끼리 서로 무리지어 피어 있는데, 가끔 꽃밭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국에서 피는 야생화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수수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를 볼 때 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어와 가냘픈 몸이라도 흔들어대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지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지 못 하고 몸을 기울여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산길은 가파르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고향의 뒷동산을 걸어가 듯 편안한 길이다. 호수로 내려 가는 길에 등산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스위스 모녀를 만났다. 그들은 무언가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무엇이 있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마못(marmot)"이라고 모녀가 함께 외친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참 즐거운 모양이다.
바위 색과 똑 같아 금세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바위 옆으로 다람쥐처럼 생긴 것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녀는 전에 한국에 왔었다며 호의를 보인다. 특히 전주 한옥마을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귀 뜸을 해준다. 그리고 사진촬영도 기꺼이 응해준다.
마터호른을 등대삼아 오전 내내 걸었다. 나무가 없어 시야도 탁 트이고 마터호른까지 우뚝 서서 산길을 안내해 주니 호수를 찾아 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편안한 소풍길이다. 어느새 목적지 호숫가에 이르렀다. 호수는 푸른빛을 쏟아내고 있다. 큰 나무들도 병풍처럼 서 있다. 게다가 마터호른 봉우리까지 물에 비추고 있으니 비경이 따로 없다. 산중 어느 호수 보다 맑고 시원해 보인다. 호수에 손을 가만히 넣어 보았다. 생각보다 매우 차다. 너무 차가워 오래 담글 수가 없다. 빗물이 아닌 빙하물인 듯싶다.
나무 그늘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마터호른은 여전히 눈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제는 흰 구름까지 봉우리에 멋지게 걸쳐 있다. 마터호른은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볼 때 마다 새로운 변신을 꾀 하는 것 같다. 시내에서 사온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산길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