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회의 입구 풍경
송주민
그리고 저녁, 수녀님들의 식탁에 초대를 받았다. 그동안 수녀원 한편에 마련된 방문자들의 집에서 프랑스인들과 식사를 함께 해온 터였다. 수녀님들과 방문자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머물렀다. 한국 출신의 수녀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수녀원, 머나먼 고국 땅에서 온 손님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것일까. 우리는 일반인은 들어가 보기 힘든 곳, 그러나 그녀들은 항상 일상을 사는 곳, 그것도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자리에 초대된 것이다.
이곳은 제한된 외출 정도만 허용하는 이른바 '관상 수도회'('관상'이란 넓은 의미로는 실천적 태도와는 상대적으로 인식·명상·묵상 등의 정관적 태도를, 좁게는 신앙에 의한 진리를 논리적인 논증에 의하지 않고 경험적·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뜻함- <두산백과> 요약)라고 한다. 사회 참여나 포교, 교육 등에 헌신하는 활동 수도회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오래된 돌로 지어진 수녀원 건물을 바라보다가, 비밀의 문을 통과하는 기분으로 현관문을 들어선다. 조금씩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금기(?)를 깨고 들어가는 듯한 호기심과 낯섦이 주는 어색함이 상존한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식탁에는 정갈한 하얀 수도복과 검정 베일을 내려쓴 수녀님들이 둘러앉아 있다.
우리와 비슷한 피부색의 익숙한 인상들인데, 어딘가 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세상에서 온듯한 풍모, 차원이 다른 시공간 속으로 나 홀로 들어온 듯한 어색하고도 묘한 분위기가 주위를 온통 감싼다. 둘레에는 하얀 벽면, 중앙에는 '자비의 예수'를 뜻한다는 그림이 걸려 있다.
시각에 확 빼앗겼던 오감이 차차 제자리를 찾고, 음식 냄새가 진하게 전해진다. 향이 강한데, 이것은 카레다. 게다가 빨간 고춧가루가 묻은 김치, 또 하얀 쌀밥까지. 한국에서 온 우리 입맛을 고려해 특별히 준비해주신 것이라고. 그 옆으로 프랑스식의 바게트와 샐러드도 놓여 있다.
"우리 웃기는 여자들이야. 하하하."음식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긴장하는 낯빛이 역력한 나를 보며, 원장인 로사 수녀님이 던진 말이다. 그 말에 수녀님들 모두 한바탕 크게 웃는다. 나도 부끄러운 웃음이 나고, 여전히 눈을 둘 곳을 찾아 헤매지만,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밥도, 카레도 한국에서 먹던 맛과 비슷하다. 수녀님들의 식탁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흥겹게 서로 음식을 즐기듯 나눠 먹고 있다. 와인도 한 잔씩 하신다. 물론 우리가 와서 더 신경 써서 마련한 식탁일 게다.
이 음식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금도, 그 전에 방문자들의 집에서 매 끼니 수녀님들이 차려준 맛있는 프랑스식 식사를 먹을 때도, 궁금했다. 수녀원 어딘가에,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하는 비밀의 정원이나 텃밭이라도 있어서, 직접 기른 먹거리를 내 주는 건 아닐까?
"저기 아래에 마트에서 남은 식료품들을 가져다주지. 그걸로 해먹는 거예요."유통기한은 조금 지났으나 먹기에 지장이 없는, 우리로 따지면 푸드뱅크 같은 곳에서 제공하는 먹거리를 조리해 음식을 해먹고 내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가장 서민적인 마트라고 하는 곳에서 기증해주고 있단다. 말을 듣는 순간, 그 찰나 실망감이 확 밀려온다. 나는 수녀님들이 키운 무공해 식재료를 상상하고 있었다.
우리가 못 들어가는 수녀원 뒤뜰에는, 세속의 때가 없는 일용할 양식이 싹트고 있는 줄 기대했던가. 그런데 마트라니. 그것도 신선도도 떨어져 버린 잉여로운 식재료들. 환상이 여지 없이 무너진다. 어쭙잖게 보고들은 바, 수도원은 '기도하고 노동하며' 손으로 직접 일궈 가는 자급자족 공동체라는 인상이 내게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