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 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는 페펙의 뒷모습
임하영
몇 주 전이었다. 페펙이 말했다.
"나 이번 토요일에 독일에 갈 거야."주말을 포함해 며칠 동안 삼촌네 가족을 보러 프랑크푸르트에 간다는 것이었다.
"아, 그럼 잘 갔다 와"라고 말하려던 참에 퍼뜩 생각이 났다.
'으잉? 내가 파리 다음으로 가려고 하던 곳도 프랑크푸르트였는데?'
그래서 페펙에게 물어봤다.
"나도 같이 가도 돼?"그래서 페펙은 숙모한테 메시지를 보내 혹시 나도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어봤고, 숙모는 흔쾌히 'OK'라고 답을 주셨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그리고 매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다시 파리 동역. 기차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페펙은 누가 프랑스 고등학생 아니랄까 봐 가판대에서<르 카나르 앙셰네(Le Canard Enchaine)>와 <소사이어티(Society Magazine)>지를 사 들고 기차에 오른다. 페펙의 설명을 빌리자면 <르 카나르 앙셰네>는 탐사보도, 그리고 풍자를 전문으로 하는 잡지라고 한다. 여러 가지 사회이슈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사생활까지 끈덕지게(?!) 파고들어 '폭로전문 주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나름 프랑스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잡지이다.
반면 <소사이어티>는 2015년 3월에 창간된, 말 그대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잡지라고 한다. 기존의 잡지들과는 달리 젊은 층을 겨냥해 여러 참신한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잡지 삼매경에 빠진 친구를 옆에 두고 역사에 앉아 시계만 빤히 쳐다보다 출발시각 몇 분 전, 기차에 올랐다. 각기 기차표를 예매한 시점이 달라 좌석이 달랐던 우리는 열차에 오른 뒤, 혹시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파리를 벗어난 기차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동쪽으로 향할수록 점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에 희끗희끗 보이는 지평선, 그 중간에 유유자적 풀밭을 거닐고 있는 소들을 구경하며 편안히 기차여행을 즐겼으면 좋았겠지만, 미처 다 회복되지 않은 육신은 나를 지치게 했다. 기침할 때마다 폐가 쭈그러들고, 코를 풀 때마다 뇌가 흘러나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나의 독일여행은 막이 올랐다.
국경을 넘은 기차는 다른 여러 도시를 거쳐 자정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는 페펙네 숙모가 우리를 마중하러 기다리고 계셨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프랑스식 '쪽쪽' 볼 인사를 나누고 그 집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잠시 짐을 풀고 다시 마인 강 가녘을 따라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1시. 대충 세수를 하고 침대로 향한다.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계획하지도 못한 장소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몸은 아주 힘들었지만 새로운 문화,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경험한다는 사실에 없던 기운이 다시 생겨났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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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살던 것처럼 익숙해졌을 때, 그 도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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