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리 탱자나무. 나이가 많지만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어 보기 좋았다.
전갑남
지난 15일, 아내가 주섬주섬 출근 준비에 분주하다. 요즘 들어 무척 해가 짧아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니 아침 시간이 빡빡하다.
나는 현직에서 물러나 있고, 아내는 직장에 출근한다. 그래 나는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다. 대신 아내는 부랴부랴 서두른다. 집안일을 함께하는데도 출근하느라 어떨 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아내가 급히 현관문을 나선다. 그래도 잔소리는 빠뜨리지 않는다.
"당신, 오늘은 자전거 타고 사기리 쪽으로 간다면서요? 나중에 나랑 같이 가지 그래요? 그쪽은 자전거 타기 위험한데…. 길 건널 땐 끌고 가고, 조심 또 조심 알죠! 아예 차로 가면 어때요? 이건창 생가, 사기리 탱자나무 사진 찍고, 갔다 오면 이야기 부탁해요!"먼 길 떠나는 아이 단속하듯 잔소리에다 당부가 섞여 있다. 대꾸하지 않을 내가 아니다.
"알았다고! 늦었다면서 뭔 말이 이렇게 많으실까? 당신이나 차 조심하라고! 운전할 때는 핸드폰 받지 말고. 끝나면 바로 퇴근할 거지?" 우리는 그러고 보면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잔소리는 결국 안전으로 끝을 맺는다.
탐방길에 만난 최영섭 선생 기념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문화재 탐방을 떠난다. 브레이크도 점검하고, 튜브에 바람도 빵빵하게 채운다. 시원한 물병 하나 달고서 페달을 밟는다. 목적지는 인근 마을 사기리. 그곳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사기리 탱자나무를 찾아간다.
'조심조심!'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애라, 돌아가자! 좀 더 타면 될 것을!' 나는 지름길인 찻길을 피해 논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논길과 시골 안길은 자전거 타기에 안전하다. 삭막하지 않아서 좋다. 들판은 얼마나 넉넉한가! 요즘 들녘에는 햇살과 바람에 곡식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런 황금빛 가을 냄새도 풍긴다.
시골 마을길은 정겨움이 있는 동네 고샅길이다. 굽어진 길목마다 이야깃거리가 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가마솥에서 밥 타는 냄새가 술술 풍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마을길 끝을 달려 어느새 찻길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피할 수 없는 찻길이다. 인도가 없는 좁은 신작로에 차가 씽씽 달린다. 자전거와 차가 함께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