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제 동생 기저귀를 개려고 합니다. 곁에서 늘 이 모습을 지켜보니, 저절로 배우고 동생을 아끼는 마음도 키웁니다.
최종규
한국 사회에서 여성 목소리는 언제나 억눌립니다. 여성인 교사는 많아도 여성인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는 드뭅니다. 여성인 가정주부는 많아도 남성인 가정주부는 드뭅니다. 여성은 교사나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로 일하더라도, 집에서는 '가정주부' 몫을 함께 맡아야 하기 일쑤입니다. 남성은 교사나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로 일하면, 집에서는 '두 다리 뻗고 놀거나 쉬면서 밥상을 받고 텔레비전을 켜고 신문을 펼치는 사람'이기 일쑤입니다.
아니, 남성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만 일해도 '집에서 집안일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합'니다. 여성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일해도 '집안일 도맡는 가정주부'로도 일해야 합니다. 남성은 집에서도 아이하고 보내는 겨를이 짧고, 아이하고도 잘 안 놀아 주기 마련이며, 아이가 똥오줌을 아직 못 가릴 적에 기저귀조차 제대로 못 채우기 마련입니다.
집에서 천기저귀를 쓰면서 아기 똥기저귀를 손수 빨아서 햇볕에 말리거나 폭 삶아서 말리는 남성이나 아버지는 몇이나 있을까요? 아기한테 젖떼기밥을 끓여서 먹일 줄 알거나,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먹일 줄 알거나, 아이가 크면서 배우고 살면서 익힐 슬기나 사랑을 기쁘게 물려주거나 알려주는 남성이나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까요?
노동시간이 가정을 유지하는 시간, 삶을 지탱하는 시간을 삼켜버렸다. 최장 노동시간이지만 생산성은 되레 떨어지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을 희생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취급받고 있다. (237쪽)"저는 앞으로도 선택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떤 작업이든 내가 하는 선택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재능은 별로 없지만 건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찾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어요." (취업준비를 하는 '하람'이 들려준 말/287쪽)안미선님은 <여성, 목소리들>이라는 책에서 이 나라 여성 목소리만 들려줍니다. 어쩌면, 볼멘소리로 '꼭 그렇지는 않다구!' 하고 부아가 나는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어쩌면, 성난 소리로 '여자 주제에!' 하고 한마디 내뱉을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여성 노동자'나 '노동자'가 아닌 '하청'이나 '비정규직'라면서 고개를 돌릴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가사노동자'가 아닌 '가정주부'일 뿐이라면서 등을 돌릴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참말 얼마 앞서까지도, 또 아직도 곳곳에서, 차례상이나 제삿상에서 여자가 절을 하면 '여자가 어딜 함부로!' 하고 외치는 남성이 많았습니다. 젊은 사내나 아들이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만지려고 하면 매섭게 나무라는 남성 어르신이 많았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남성과 아버지는 왜 그리 바보스러울까요? 몸으로만 보면,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세거나 튼튼하다고 할 만합니다. 남성은 여성하고 몸으로 대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을 더 많이 할 줄 압니다. 작고 가녀린 여성이 아기한테 젖도 물리고 기저귀도 갈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남자 어른 수발'까지 다 하고 '술상 차리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없으니까' 온갖 일을 다 시키면서 힘으로 억누르면 된다고 여기는 마음일까요?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여성'쯤이야' 주먹 한 방이나 발길질 한 차례로 가볍게 '누를' 만하다고 여기는 마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