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관순 선생의 딸 강길녀씨가 보여준 사진으로 왼쪽 위에 강관순 선생, 어머니, 그 아래에는 강관순 선생과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주역들이다.
오문수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놓고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일제강점기 시절 제주도에서 불렸던 <해녀가>의 1절과 4절 가사이다. 지난 9월 19일, 일행과 함께 우도를 방문했을 때 성산포에서 떠난 우도행 배가 도착하는 동천진항 로터리 중심에는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서 있었다. 이 탑은 일본 관헌들의 가혹한 대우와 해녀 권익 옹호를 위해 분연히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천진항에 건립됐다.
제주 해녀들은 예로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 어용조합장의 횡포가 심해지자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을 요구했다.
제주도 해녀어업조합의 어용화 폐단은 1931년 여름 구좌면 하도리에서 거세게 폭발했다. 이어서 하도, 종달, 우도, 세화 해녀들이 가세했다. 이 같은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연인원 1만7130명이 참여해 238회의 집회와 시위를 펼쳤으며 우리나라 최대의 어민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조천항일운동기념관 입구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외치는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뒤에 적힌 글과 사진에는 제주도 3대 항일운동으로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을 선정했다.
해녀항일운동 주역 중 한 분인 강관순, <해녀가>를 작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