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의 손에서 시집을 빼앗아갔을까

[공모-도둑들]

등록 2015.10.05 17:36수정 2015.10.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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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가을, 청춘들이 가득 모여 있는 대학도서관은 남는 자리 하나 없이 붐빈다. 그런데 책상 위, 그들이 펼친 책을 살펴보면 열에 아홉이 비문학 서적이다. 비문학 서적도 과제를 위한 독서이지,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조차 드물다.

취업 준비로 인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눌러 앉아 있는 것이다. 느긋한 문학 감상의 시간은 모조리 도둑맞은 듯이. 이렇게 보면, 요즈음의 대학생들의 독서는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처절한 암기를 위한 것 같다.


누구나 알고, 느끼듯이 우리나라의 평균 독서량은 매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 달에 0.8권으로, 1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이다. 미국이 6.6권. 일본이 6.1권인 것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0.8이라는 그 작은 숫자 안에서도 시집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들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매년 11월이면 열리는 국어국문학과 학술제는 이틀간 시, 현대소설, 고전소설 이렇게 세 분류의 분과 동아리가 일 년 동안 창작하고 공부해온 성과를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시는 분과원들이 창작한 텍스트를 낭독하고 짧은 인터뷰를 갖는 것으로, 현대소설은 창작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찍은 단편영화 상영을, 고전소설은 기존의 작품을 뮤지컬로 각색하고 연출하여 무대로 올리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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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모습 2014 글틀녘 가을정기 시화전 ⓒ 김선후


이중에서도 나는 일학년 때부터 쭉 시 창작 분과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시 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시를 잘 알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국문학을 전공으로 하면서 갖는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나를 이끌었고, 결론적으로 지금은 시를 매우 사랑하고 꾸준히 공부도 하고 있다.

우리 분과는 일 년간 분과원들이 쓰고 합평한 시를 모두 모아서 '시향'이라는 이름의 책자로 엮어 나눠 가지는데, 학술제날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여분을 마련하여 강당 입구에 비치해 놓는다. 그러나 자리에 온 대부분이 그 책자가 무엇인지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가져가는 인원은 매우 적다. 교수님들이나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면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후배, 친구들이 쓴 시가 담긴 얇은 책자조차 두 손으로 가져가 읽으려 하지 않는 지금인 것이다. 낭독을 할 때 화면으로 텍스트를 띄워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이들이 학술제 중 가장 흥미를 갖지 못할 때가 바로 시 낭독의 시간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머지 두 분과는 친숙한 얼굴들이 스크린 속에서, 무대 위에서, 표정과 몸짓으로, 또는 노래로 보여주니 그 임팩트가 다른 모양이다. 속상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학술제가 모두 끝난 이후에 사람들에게서 자주 회자되는 주제에서도 시에 대한 이야기는 셋 중 가장 밀려나 있으니 말 다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집보다는 소설책을 더 많이 읽고 접하며, 소설책보다는 영상을 더 많이 소비한다. 인터넷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글귀들이 마음에 와 닿으면 그 시에 대해 검색을 해보고 좋아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이 시집을 구매하고 가방의 한 켠에 자리를 내어주는 데까지 연결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현대인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한 번에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것, 단숨에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다. 시는 비교적 짧은 길이에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유를 통해서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영상 매체가 등장하면서, 활자로 된 텍스트는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이리저리 치이며 온전히 지켜오던 자리를 눈 깜짝할 새에 빼앗긴 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습득하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걸까. 어쩌면 손 써볼 틈도 없이 다 도둑맞은 사람에게, 잃어버린 것을 얼른 찾지 않고 뭐하냐고 타박하는 꼴일 수도 있겠다.

우리 시분과에서는 학술제뿐만 아니라 봄, 가을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정기 시화전을 연다. 각자 자신들이 쓴 시에 그림을 더해 교양관 앞에서 삼일간 전시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위치하고 좀 더 오픈된 행사인 이마저도 다른 이들의 흥미를 끌어오기 쉽지 않다. 그저 우리 과 학생들만의 자축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시화전을 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마트폰 화면만 보며 걸어가는 사람, 뭐가 그리 바쁜지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빨리빨리 걷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주변 풍경조차도 감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시를 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은 욕심인가보다. 나조차도 그들의 좁고 바쁜 걸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의 문장에 의해 가슴이 일렁이는 그런 감성을, 아니 하나의 문장을 곱씹어볼 시간적 여유를, 우리는 어느새 도둑맞은 것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에 와서는 취업준비를 해야 하고, 취업을 해서는 승진 시험을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해서는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를 다른 누구보다 훌륭히 키워내야 하고…. 쉴 틈 없이 다음을 준비해야하는 삶에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독서가 아닌 시의 낭만을 즐긴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오랜 사유를 할 시간과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를 훔쳐갔다는 것이 스스로 만들어 낸 핑계는 아닐까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좋은 시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주고,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며 심지어는 터닝포인트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경쟁하듯 살아가는 사회 환경에 의해 두 손에 잡을 시집을 도둑맞은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을 훔쳐가도록 방치한 것이 우리 스스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하여 잃어버린 것일 수도, 그 도둑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도둑들 공모
#도둑들 #공모기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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