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만 국정화가 필요하겠어요?

유신의 망령이 살아나는 '그때'가 왔는 지도 모른다

등록 2015.10.08 10:40수정 2015.10.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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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국정화 '박근혜 효도용?'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집회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10개 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 이희훈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니군요.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유신의 신민화교육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호탄이 아닐까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국민을 계도하고, 이를 위해 정규교육과정을 이용하겠다고 하는 것이 신민화 교육의 시작이잖아요. 그렇다면 이왕 하는 것 좀 더 확실하게 하시지요. 차제에 신국민교육헌장도 만들고, 이른바 좌파들이 다 장악하고 있는 윤리 도덕 교과서, 정치 사회 교과서도 국정화하자고 해요. 국어 교과서는 얼마나 국정화가 더 필요하겠어요. 도덕과 정치, 그리고 국어만큼 국민의 정신 교육을 좌지우지할만한 이데올로기 교육 부문이 어디에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한둘이 아니네요. 부총리급 정도를 수장으로 하는 국정화 교과서단이라도 만들어서 유신 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고 하는 게 어떨까요? 옛날처럼 유정회도 만들고, 대통령 선거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자원 낭비가 극심하니 체육관에서 선출하는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부활시키면 어떨까요? 차제에 말 안 듣는 시민단체들도 다 국정화하고 그 앞에 일베 기수단이 머리띠 매고 나치의 유겐트처럼 자랑스러운 국정화 사업을 선전할 수 있도록 마구마구 지원 좀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아닐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그때가 온 것은 아닐까요? 역사 공부나 제대로 했을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상대로 침을 튀겨가면서 역사 교육을 하려 하고, 친일 부역을 한 자랑스러운 선친의 후광으로 성장한 여당 대표가 앞장서 총대를 매겠다고 하고, 게다가 이 모든 요설들이 저 위대한 유신의 영도자 박정희의 딸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딱 그 시대가 도래할만한 때가 아닌가요?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그 시대의 기억을 잃어버린 낙원처럼 생각하는 세대들도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40여 년 전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정세가 얼마나 변화무쌍해요. 나날이 힘을 더해 가는 중국의 패권화에도 대비하고, 평화 헌법을 수정한 일본의 우경 군사 대국화에도 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않는 대박 통일도 준비해야 하고, 혹시 모를 북한의 붕괴로 인한 난민 쇄도에도 대비해야 되잖아요. 그러고 보니 유신을 감행한 40여 년 전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럴 때일수록 투철한 국가관이 필요하잖아요. 국사 교과서 하나만으로 끝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은 이왕 하는 것, 존경해 마지않는 선친이 했던 것보다 좀 더 큰 판으로 다시 짜야 하지 않을가요?

이제 드디어 오래전에 지하 감옥에 유폐되었던 유신좀비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부활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 아닐까요? UN에까지 가서 새마을 운동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고모씨 같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국감장에서 종북 딱지를 들고 사방팔방에 떡떡 붙여대는 모습을 보니 제2의 유신이라도 할 것 같은 필이 팍팍 느껴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세치혀로 알랑거리며 앞장 서 부역하는 자칭 인텔리겐차 꼰대들의 모습도 달라진 것이 없군요. 이제 드디어 황국신민 만세라도 불러야 할까요? 오호라, 통재여! 수십년의 민주화 투쟁이 이렇게 일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무상이고 제행무상일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철학박사 이종철은 연세대의 철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국정화 #국사 교과서 #유신 #박정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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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회 비판, 예술 등에 관심있습니다. 전 몽골 Huree ICT University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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