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이중섭 그림
이중섭 미술관
2년 전 10월에도 제주도에 왔었다. 혼자 하는 첫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이기도 했다. 재미있게 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편히 쉬지도 못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사실에 기가 눌려 4일 내내 긴장만 하다 끝났다. 위치도 확인하지 않고 예약한 호텔은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었고, 그곳에 묵는 내내 강정 마을을 제외하곤 근처 이중섭 거리만 들락거렸다.
첫날, 이중섭 거리를 찾아가며 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무엇이든 혼자 척척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혼자 하는 여행 앞에서 나는 마치 처음 하루를 맞는 사람처럼 서투르기만 했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고, 혼자 미래를 계획하는 일과 혼자 여행하는 일은 달랐다. 이중섭 거리를 찾아가는 데 손끝까지 힘이 들어갔다. 긴장한 발목은 단단히 굳었다.
이중섭 거리에 도착해 다른 여행자들처럼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마시고, 이중섭 생가, 이중섭 미술관에 들렀다. 예술가들이 한 판 펼쳐놓은 예술품도 구경했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어스름이 졌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서툴기만 했던 하루의 여행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튿날에도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목적지는 어제처럼 이중섭 거리. 정방폭포를 지나쳐 큰 도로로 나왔다. 한 번 왔던 길이라 이중섭 거리로 이어진 골목길로 쉽게 접어들었다. 그때 한 여행자가 내게 말을 붙여왔다. 이중섭 거리로 가려고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코앞에 있는 이중섭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그 여행자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그리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행자는 반가워하며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같이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제 한 번 와봤던 곳이었지만 나는 처음 온 척하며 여행자의 속도에 맞춰 다시 한 번 이중섭 거리를 둘러봤다. 이중섭 생가, 미술관도 또 갔다. 걷는 중간 이야기도 나눴다. 유아 교육과를 나와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녀는 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여행을 한다고 했다. 제주도도 이번이 네 번째 여행이란다.
어느덧 오후가 되자 그녀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해물 뚝배기를 먹었다.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조곤조곤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화 몇 마디 나눠봤을 뿐인데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에선 돈도 모으지 않고 여행만 다니는 그녀를 나무란다고 했다.
친구들이 명품 가방을 하나, 둘씩 늘려갈 때 자기는 천 가방을 들고 다니며 여권에 도장만 늘려왔다고 했다. 우리는 마치 10년을 본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장한 나완 달리, 여행을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그녀 덕분일 거였다. 해물 뚝배기를 깨끗이 비우고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정방폭포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