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체류자격 문제로 쉼터를 찾은 수마르혼인단절 비자를 갖고 있는 수마르는 한국 국적 취득을 희망하고 있다.
고기복
그에게 '불량'과 '불량하다'의 차이를 설명하려다 말았습니다. 15년 동안 입에 붙은 말버릇을 한두 마디 한다고 고쳐질 일도 아니고, 처음 상담할 때부터 뭔가를 다 털어놓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던 터라, 빨리 대화를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결혼 비자를 갖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주노동자쉼터에서 며칠째 머물고 있습니다.
"체류자격이 F6(결혼이민)비자잖아요. 그런데 왜 쉼터에 있어요?""이혼했어요.""아~ 그래요.""F6는 일 못 해요. 나중에 대구에서 일할 수 있어요."수마르가 결혼이민 비자로 일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틀린 정보였습니다. 비록 이혼했다고 하더라도 체류 기간이 남아있다면 취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자가 원해서 이혼했고, 취업활동이 불법이라며 대구로 간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외국인체류 안내메뉴얼 |
"국민의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국내에 체류하던 중 그 배우자의 사망, 실종,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F-6-3(혼인단절) 비자를 부여할 수 있다. 1회에 부여할 수 있는 체류기한 상한은 3년이며, 체류자격 구분에 따른 취업활동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
그런 그에게 자신에게 책임이 없고, 여자 측이 원해서 이혼한 거면 혼인단절(F-6-3)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취업에 제한이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수마르는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자신의 전처를 '불량'이라며 자기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었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5년 동안 아이를 가져보려고 병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불임은 두 사람에게 결국 상처만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체류자격을 얻으려고 결혼했다는 말을 하지만,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5년 동안 불임치료한다고 한 푼도 벌지 못했는데, 돈도 못 벌면서 고생하면 체류자격이 무슨 소용이겠냐"고 되묻습니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했고, 헤어질 때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수마르가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은 이유는 이혼 후, 국적 취득 방법도 알아보고, 대구로 내려가기 전에 며칠 묵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마르가 전처의 불임을 불량이라고 했을 때, 그녀를 폄훼할 뜻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써 온 사람들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느낌이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무심결에 뱉어낼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니까요.
외국인들 중에는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거'라고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그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털어놓은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최소한 사람에게 불량하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일러 줬습니다.
'불량'은 품질이나 기능, 성적 따위가 좋지 못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반면, '불량하다'고 할 때는 어떤 사람의 '성질이나 언행이 바르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인격과 관련된 말입니다. 일제는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조선인을 불온하고 불량한 인물이라는 뜻에서 '불령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의 행실이 불량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불량'이라고 하면, 일제가 쓰던 말본새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