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서 일하다 죽었다,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노동자의 죽음... 유가족·노동단체 분노

등록 2015.11.03 17:11수정 2015.11.0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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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조 부산지부와 노동당 부산시당 등은 3일 오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에서 백화점 입점업체 소속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마흔 살 박씨는 지난 10년간 일해오던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지난 10월 22일의 일이었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심장마비. 사인은 명확했지만, 그녀의 신분은 명확하지 않았다. 10년을 롯데백화점 안에서 일했지만 그녀는 근로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다. 입점업체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란 이유였다.

이 때문에 롯데백화점 측은 "안타깝다"면서도 이번 일과 자신들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가족뿐 아니라 노동단체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분통을 터트린다. 3일 오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에 선 박씨의 오빠가 외쳤다.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지 못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생의 억울한 사연을 살펴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억울한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빠 박씨는 "롯데백화점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착취하는 것이 억울한 죽음의 큰 원인"이라며 "동생과 같이 롯데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신속히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4천여 명...롯데쇼핑 소속은 150명 남짓

알바노조 부산지부와 노동당 부산시당 등은 3일 오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에서 백화점 입점업체 소속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그와 함께 선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이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만큼 이번 일과 같은 일도 늘어날 것이란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천연옥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나"고 되물었다.

이런 우려는 롯데백화점의 인력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4천여 명 중 롯데쇼핑 소속의 정규직 직원은 150명 남짓. 96%에 달하는 3850명 정도의 노동자는 용역이거나 개별 입점 업체가 고용한다. 입점업체 소속 직원들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혹은 업체가 단기로 고용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몇 명인지에 대한 부분을 백화점 측은 파악하기 어렵다.


노동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서도 백화점 입점업체들의 인력 수급 체계를 비판했다. 이들은 "처음 일을 시작하면 입점업체 직원이 알바노동자에게 주소, 주민등록번호만 조사한다"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다 보니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롯데백화점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알바 노동자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입점업체 노동자 전원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을 의무화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롯데백화점 측도 뒤늦게 대책을 마련해 보겠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홍보실 관계자는 "관련 부서와 협의해서 근로계약서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 "사업장 내에서 일하는 분들이 법적 테두리 안으로 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화점 측은 사망한 박씨를 사업재해로 인정하라는 유가족과 노동단체들의 요구에는 즉답을 피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롯데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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