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곶자왈을 걸어 들어간 후 1분쯤 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황보름
화순곶자왈 입구에 선 나는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을 외치고만 싶었다. 둘이 왔었으니 이게 안 무서웠겠지! 나는 혼자라구!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전망대에 색색의 우비를 입은 사람 대여섯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내겐 아득하기만 했다.
입구 앞에 서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혼자 저 숲 속에 들어갔다가 길이라도 잃어 아무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마당에 시도도 안 해볼 수는 없다. 한 번, 해보자! 그렇게 겨우 5분. 100분 같았던 5분을 걸어 들어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길은 왜 이리 헷갈리는지!
곶자왈은 내가 익히 봐왔던 숲이 아니었다. 자유분방한 나무들이 사방에서 나를 조여오듯 다가오고 있었고, 길이라고 나 있는 것도 길인지 아닌지 애매하기만 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왜 이런 곳을 추천해 준거지?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외진 곳은 가지 마세요, 특히 비오는 날엔입구로 무사히 돌아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긴 어디지? 지금 이 외진 산자락에 나 혼자 서 있는 거야? 버스에서 내릴 땐 곶자왈만 찾아 가면 된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방이 산이고, 보이는 건 버스 정류장뿐이다. 거기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진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려도 30분 동안 차 한대 서지 않았다.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아 아무 버스라도 타고 갈 생각이었지만, 그 아무 버스도 올 기미가 없다. 10분에 한번 꼴로 쳐다보기도 무서운 커다란 덤프트럭이 지나갈 뿐이다. 엄청난 곳에 와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옷도, 머리도 다 젖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자. 지도 어플을 확인하니 다음 정류장이 15분 거리에 있다. 버스정류장 이름에 '사무소'가 들어가니 그곳 근처엔 건물이 있을 것 같았다. 건물이 있다는 건 사람이 있다는 말이겠지.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자 다행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 옆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서서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여전히 버스는 오지 않았고, 지도 어플에선 벌써 몇 번째 버스 표시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고, 옆의 두 사람은 느긋하기만 하다. 나 혼자 안달복달하다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택시 어플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택시도 감감무소식. 그때 저쪽에서 빈 택시 하나가 달려온다. 나는 얼른 나가 손을 휘휘 저었다.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택시는 나를 못 본 척 그냥 지나간다. 저 멀리 가는 택시를 망연히 바라보는 내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엔 택시가 안 서요. 외져서 그래요."외진 곳인데 왜 택시가 안 서는 걸까. 그분이 계속 말을 한다.
"제주에서 이동할 땐 차가 있어야 해요. 안 그럼 이렇게 오래 기다리니까. 이런 곳에 올 땐 더 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요. 괜히 시간만 버리고 안 좋아요. ""버스가 오긴 오겠죠?""오긴 오겠죠."나는 그 분과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은 후, 입을 닫았다. 추웠고, 지쳤고, 아이씨, 배도 고팠다. 옆의 누나에게 개인 파산을 하게 된 과정을 낱낱이 털어놓던 그분은 드디어 버스가 도착하자 나 먼저 올라타라며 양보를 해줬다. 십 년 감수하는 기분으로 버스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은 낭패다. 생고생만 했구나.
한 시간을 달려 모슬포 항에 도착한 뒤 부리나케 식당으로 달려가 따뜻한 보말 해장국을 들이켰다. 빗속에서 20분을 걸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곤 씻고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저녁 땐 고등어 회를 같이 먹자는 남 사장님의 제안도 거절해야만 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몸이 축난 것이다.
제주에는 외진 곳이 많다. 차 없이 혼자 움직일 땐 미리 버스 정류장 위치와 차 배차시간, 그 외 돌아올 방법 등을 '확실히!'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외진 곳엔 되도록 혼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 곳은 나중에 친구나 가족과 함께 가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제주라도, 비가 올 땐 어디 안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빈대떡을 먹거나 낭만을 씹는 게 좋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엔 곶자왈 같은 덴 안 가는 게 좋다! 그리고 또, 그곳 지리에 아무리 밝은 사람의 말도 때론 가려 들어야 한다. 어떻게 가려 듣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고생을 한 후에나 알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 그러니 우선은 그냥 하고 봐야 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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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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