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앞 피켓든 정의당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위해 입장하고 있다.정의당 의원들이 국정화 반대 피겟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 암울한 점은, 국민 대다수가 실제로 겪고 있는 고통은 '경제 성장률' 수치가 말해주는 것보다 훨씬 끔찍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20∼30대 가구주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0%대로 떨어졌고, 올해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20만 명 가까이 늘어 총 627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두 통계치 모두 사상 최저와 최대를 기록했으니, '역사적인' 수치라 할 만합니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인데,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은 느닷없이 '역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민 수백 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는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악화됐다'고 책임을 돌렸고, 올해에는 메르스 환자 단 한 명을 관리하지 못해 수십 명의 사망자와 2백 명 가까운 환자를 만들어 놓고는 '메르스때문에 경제가 악화됐다'고 변명했었지요.
그러더니 여름에는 '정규직과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에 경제가 악화됐다'며, '임금삭감'과 '손쉬운 해고'를 밀어붙였습니다(이에 앞서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중동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었지요). 이러던 정부가 가을이 되니 만사를 제쳐놓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정부가 '국정화' 군불을 지피던 당시, 한국 경제는 결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외 기관들이 일제히 한국의 경제 상황에 어두운 전망 내놓으며 예상 성장률을 계속 낮추고 있었고, 국내총생산 성장률(GDP)은 세월호 이후 5분기 연속 0%대를 기록했으며, 수출 성장기여도 역시 5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때 청와대와 여당은 난데없이 '국정화'를 끄집어 냈고,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억지 결정을 밀어붙였지요.
이런 한국 상황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요사이 벌어지는 요상한 일들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는 말이 탄식처럼 흘러나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강행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우깁니다. 이처럼 우리는 몰상식이 상식 행세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요?
몰상식한 언론이 몰상식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안타깝게도, 한국사회의 몰상식은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대통령을 국민 절반 가까이가 지지하는 탓입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최근 11월 1주차(2~4일)에 집계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무려 45.7%였습니다.
지난해에는 더 놀라운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지요. 세월호 참사 이틀 뒤, 리얼미터는 박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71%로 발표했습니다. 이후 일정주기로 등락이 반복되었지만, 4월 내내 50% 이상의 지지도를 유지했습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해할 수 없는' 정부와 더불어 살면서 우리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요? 우리는 정말로 국민들의 의사는 물론, 목숨까지도 업신여기는 지도자에게 열광할 만큼 잔인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다룰 때 빠지지 않는 것으로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어려운 듯 학술적 냄새를 풍기는 말이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다시 드러냄' 또는 '대신해서 드러냄'이라는 의미입니다.
국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 대통령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수 없습니다. 오직 대중매체가 이따금씩 전해주는 모습을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지요. 언론이 권력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포기하고 '애견'이 되어 재롱을 떨 때, 국민들은 지도자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언론이 권력의 모습 그대로를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들 앞에 '다시' 드러내주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의 한국사회처럼 말입니다. 정부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냉정한 비판, 객관적 사실은 사라지고, 은폐, 칭송, 찬양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