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행 비행기표시차 때문에 비행시간 계산이 쉽지 않다
정성화
인천공항 리무진 버스는 승용차 장기 무료주차가 가능한 익산에서 타기로 했다. 예전 태국여행에서 이용했던 코스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벽 4시에 익산 리무진 터미널에 도착해서 보니, 버스표가 매진된 것이다. 한 겨울 새벽 추위에 떨면서 인천공항까지 승용차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표를 파는 아저씨가 예약했다가 안 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기다려 보라고 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은 나의 부주의를 탓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작 빠른 작은 애가 모든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짐을 부치는 과정에서 살짝 기분이 상했다. 수하물이 일정 무게를 초과하면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수하물 무게가 생각보다 적었고,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한 것에 비해 그 가격이 배나 비쌌던 것이다.
왠지 바가지를 쓴 느낌이었다. 그리고 설 명절을 전후한 황금연휴로 인해 출국 수속장에는 엄청난 줄이 만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3년 만에 큰애를 본다는 설렘으로 내 마음은 날아 갈 것만 같았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다섯 시 정도 도착했다. 대충 6시간 30분 정도의 장거리 비행이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온 것 같다. 예전에는 여행의 무료함을 잡지와 음악으로 달랬는데, 여기에 팟캐스트가 추가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열어 놓은 새로운 미디어 세계는 휴식,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갈증해소가 모두 가능한 공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정치적인 이슈에서 역사, 심리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이 내놓는 고품질의 콘텐츠가 널려 있는 곳이 팟캐스트다. 지금 팟캐스트 세상에서 활약하는 고수들을 보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에서 보통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팟캐스트를 차분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 VOD로 드라마 전편을 몰아서 보는 빈지 뷰잉(Binge Viewing)족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버스나 비행기에서 보내는 긴 기다림의 시간은 팟캐스트를 몰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제는 출장이나 여행의 준비작업에 팟캐스트 다운로드가 필수적인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면 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새로운 형태의 휴식을 즐기는 것이다. 피곤하게 눈을 뜨고 보지 않아도 그냥 지식과 정보가 귀로 들어 오는 라디오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필리핀 여행을 갔을 때, 힘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아내도 견딜 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내 표현대로 그 동안 열심히 한 운동이 체력을 더해주고, 팟캐스트가 지루함을 덜어내고, 3년 만에 아들을 본다는 기대감이 우리를 들뜨게 했기 때문이리라.
공항에 회원제 스파라니... 우리는 제법 싱싱한 상태로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맛집을 찾아 나섰다. 멜버른까지는 대략 8시간의 장거리 비행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좀 버티면 되겠지 하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찾은 곳이 말레이시아 스트리트 푸드를 판매하는 코너였다. 식당 3개가 연달아 붙어 있었는데, 첫 번째 집의 기다리는 줄이 가장 길었고, 메뉴도 가장 괜찮아 보였다. 아내와 작은 애는 첫 번째 집에서 줄을 서고, 나는 줄이 가장 짧은 세 번째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