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렬씨가 펴낸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의 부제는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 통치'다.
유성호 / 레디앙
이충렬(58)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야당정치권 등에 몸담았다. 스스로 "남한테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조직부장, 민주개혁정치모임 사무차장, 노사정위원회 책임전문위원, 노무현 대선후보의 정책특보를 지냈으니 '내세울 경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는 당선자 특사로 백악관을 방문해 주목받았다.
이씨는 야당정치권에 몸담고 있었지만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접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이 야당의 패배로 끝나자 강화도로 귀촌했다. "당대에 내 역할은 없다"라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으니 '진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야당의 약한 고리인 '정당 국고보조금 문제'를 과감하게 제기한 것이나 최근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이하 <한반도 삼국지>, 레디앙)를 펴낸 것은 그런 용기의 결과물이었다.
<한반도 삼국지>에는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통치'라는 인상적인 부제가 달려 있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40여년간의 현대사를 통해 '한반도 정치'의 실체에 접근했다. 한반도를 움직이는 세 개의 힘은 박정희(근대화 혁명), 김대중(민주주의 혁명), 김일성(공산주의 혁명)이고, 이들은 '유훈통치'를 통해 여전히 한반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 개의 혁명' 가운데 가장 성공한 혁명은 역시 근대화 혁명이다. 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의 패권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배경이다. 여기에는 1980년과 1987년(대선), 1990년(3당 합당)에 일어난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양김이 이끌었던 민주주의 혁명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정희 세력의 패권세력화, 민주세력의 분열과 탐욕으로 잊혀진 것은 '자유, 평등, 평화'라는 6월항쟁의 가치와 정신이다. 그는 '세 개의 유훈통치'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이 6월항쟁의 가치와 정신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주도권에 도전하고 있는 미국의 샌더스나 영국의 코빈, 캐나다의 트뤼도 같은 지도자가 야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신'이나 '노무현 정신'만을 외치는 야권에서 그런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씨는 지난 12일 여의도에서 만나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통해 박정희 세력이 청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게 됐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김영삼 정권을 '문민권력', 김대중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이 권력들의 본질을 오해시킨다"라며 "김영삼 권력은 '3당 합당 권력'이고, 김대중 권력은 'DJP 연합 권력'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살던 시대를 객관화하고, 미움과 증오보다는 긍정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민주세력이야말로 남북한의 군국주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씨와 2시간 동안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남북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지시대"
- 이 책은 40년간의 '한국현대사'라고 해야 하나, '한국정치사'라고 해야 하나? "당대사라고 이름붙어야 한다고 본다. 상고사도 있고,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도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사를 서술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한 '역사전쟁'이라는 것도 해방 이후사가 핵심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사는 아직 역사학의 공인된 역사로 끝난 게 아니고 현재의 일부다. 해방 이후사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다루지 역사학에서는 잘 안다룬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당대사로 봐야 한다. 한 시대가 마무리되지 않아 쓰기가 어렵다. 지금도 사회 제세력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내가 굉장히 마음 속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생 보수 야당에서 생활했다. 보수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김부겸, 행장부 장관을 지내고 총선에 출마하는 정종섭, 지금은 쉬고 있지만 차세대에서 중요한 사람인 김성식, 원내대표를 지낸 야당 중진의원 전병헌,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임태희 등이 다 내 친구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한다. 그런데 이충렬? 남한테 내세울 만한 경력이 하나도 없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세력이 완패하고, 나이도 60세 가까이 되면서 당대에는 내 역할이 없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체념하게 됐다. 당대에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들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국회의원 등으로 출세할 생각도 없어졌다. 그렇게 맘을 비우니까 작년에 정당 국고보조금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
"정당 국고보조금은 당권파의 쌈짓돈"). <오마이뉴스>에서 나를 인터뷰해서 내 뜻이 많이 알려졌고, 야당에서는 약간의 제도개선도 있었다.
연초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치권에서 자리를 못잡은 것이 내가 무능해서냐? 내 성격에 결함이 있어서냐, 처세술을 잘 못해서 그러냐? 내 잘못이냐,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냐를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성격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거나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선자 특사로 백악관에 방문했는데, 주간 <오마이뉴스> 창간호에서 이것을 터뜨렸다. 제목도 '미국은 한국 대선에서 손 떼라'였다. <조선일보> 등이 나를 노무현의 반미성향을 잘 나타내는 사람으로 찍으면서 나는 날아갔다. 그때 내가 45세였는데 정치적으로 도약할 시기에 정치적으로 몰락해 버렸다.
내가 출세하지 못한 것은 운이 나빠서거나 성격적으로 적응을 못해서라기보다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가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당대에 실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내가 마음 속에 생각하는 가치가 뭘까? 60세가 다 되니까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보수정당에 몸담는다는 것은 국회의원을 목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영삼, 김대중 등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필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
내가 80년대부터 정치권을 왔다갔다 했는데 단 한번도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찾아간 적이 없었다. 보수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왜 권력자들 안찾아가?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었을테니까. 그래서 1월 초부터 페북과 카톡, 밴드 등에 연재를 시작했다. 원래 제목은 '한반도 삼국지연의'였다.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를 위한 서적이 아니고,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 전부가 당대사를 같이 한번 이해해보자는 시각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약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세 개의 힘이 있다. 김일성, 박정희, 김대중으로 각각 이어지는 흐름이 그것이다. 이 세력들이 한반도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우리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시대를 어떤 역사시기라고 규정할까?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분단시대'라고 받아들였고 이제껏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되돌아보니 '삼국시대'였다. 남북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라고 느꼈다. 이 세 세력의 움직임 속에서 내가 살았던 시대를 설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악마화하면 한반도 정치 못봐"- 어떤 점에서 '한반도 삼국지'인가? "한반도는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남북한이 따로 놀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서술할 때도 남한만 서술한다. 그래서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의 대립구도로 설명했다. 남북관계는 외교와 통일의 영역일 뿐이다. 이렇게 남북관계는 외교, 통일의 영역이어서 그것이 남한의 정치발전이나 남북한의 상호쟁투과는 분리돼 따로 놀게 됐다. 그렇게 통합돼 있지 않고,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상대방을 악마화해서 한반도 전체 역학관계, 한반도 정치를 못본다.
박정희, 김대중·김영삼, 김일성 중에서 김일성 그룹은 그 이전 조선공산주의 운동사와는 별개의 세력이다. 김일성 그룹이 독립운동 했지만 '김일성의 독립운동'만 있다. '박헌영의 독립운동'은 없다. 그러니까 김일성은 고구려의 주몽처럼 북한체제의 시조다.
김영삼·김대중 등 민주화세력은 임시정부와 김구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정치적 유전관계가 없다. 김대중의 대부는 장면이었고, 김영삼의 대부는 장택상이었다. 이들은 김구하고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이들이 장구한 기간 동안 민주화운동하면서 김구와 연결돼 있다고 주장해왔을 뿐이다. 김구는 단정(단독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아서 대한민국에 '김구세력'은 없다.
박정희 세력은 족보상으로 보면 친일파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승만, 박정희를 하나의 세력으로 생각할 수 있고, 같은 흐름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다르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양자도 아니고 정치적 후계자나 계승자도 아니다. 박정희는 독자적으로 권력을 쟁취했고, 현재 존재하는 보수세력의 아버지다.
그런데 여기서 김영삼이라는 사람이 묘한 사람이다. 김영삼의 역할은 삼국지의 주유와 같다.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최대의 승리를 가져온 주역이다. 하지만 주유가 삼국시대의 주인공은 아니다. 김영삼이 그렇다. 민주화세력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김영삼이 패배해 박정희 세력에 투항하지만('1990년 3당합당'), 김영삼을 빼고는 민주화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당대사 세 개 세력의 시조가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이다. 박정희가 천왕봉이라면 이승만은 조그만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김대중의 경우에도 신익희 등이 있었지만 그도 조그마한 봉우리다. 김일성은 이후 김정일, 김정은으로 가고 있다. 박정희도 이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가고 있고, 김대중도 이후 노무현으로 갔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유전되는 흐름이다. 당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력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 그런데 이런 삼국지는 결국 영웅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책은 지도자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그 밑바닥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움직임이나 역할은 그 의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부여했다. 그래서 '지도자의 통찰력과 민중의 열망이 결합되면 거대한 혁명의 소요돌이가 일어난다'고 표현했다.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이 세 사람은 이승만, 김구, 박헌영과는 좀 다르게 민중과 결합해 거대한 혁명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어젠다를 북한 민중과 함께 이루어냈고, 그 결과 수령으로 군림했다. 박정희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을 채워주었다. 김대중은 유학도 가지 않고 선진문물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가혹한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신념화해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민중들과 함께 민주주의혁명을 성공시켰다. 이 세 사람을 영웅적으로 본 것은 아니고, 세 개 혁명의 소용돌이의 중심이자 표상이라는 것이다."
"박정희=친일파는 사소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