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굴의 클라스! 결혼한 사촌형들이 세 명, 조카도 여섯 명이다. 우리 옆 동에 사는 큰형은 제굴이가 고기 좋아한다며 갑자기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배지영
"제굴아, 쏘야(소시지야채볶음) 어때? 셰프가 해 주는 술안주 좀 먹어보자."영민(제굴의 큰형)이가 말했다. 영남(제굴의 작은형)도 "오호!" 환호성을 질렀다. 제굴은 '쏘야'를 해 본 적 없다. 형네 집 주방에 들어가는 것도 어색해서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래도 제 큰형이 부엌으로 가자 뒤따라갔다. 제굴은 양파를 채 썰어서 볶고, 소시지를 넣었다. 영민은 볶고 있는 음식에 고추장과 케첩을 넣으려고 했다. 제굴은 "형, 물에 풀어서 넣어요. 안 그럼 되직할 걸?"이라고 했다.
'쏘야'를 그릇에 담아서 거실로 온 영민. "제굴이는 '쉽쥬?' 하는 백종원이야. 완전히 잘 하대요"라고 했다. 제굴은 큰형의 칭찬을 듣지 못했다. 혼자 부엌에 남아서 뒷정리를 했다. 그릇을 싹 설거지 하고, 싱크대도 정리했다. 우리 집에서 가져온 접시(이모가 음식을 예쁘게 담으라고 사다주었음)도 씻어서 따로 챙겨 놨다.
집에 온 제굴은 한숨을 쉬었다. 프라이팬과 도마, 그릇들이 싱크대 안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비켜! 엄마가 치울게. 너는 네 일이나 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저녁밥 먹고 치우는 건 제굴의 일. 그냥 해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제굴아, 꽃차남 좀 씻겨"라고 했다. 제굴은 내 말을 "꽃차남이랑 좀 싸워"라고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열 살 차이 나는 '의좋은' 형제의 '달달한'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쿵쾅 거리는 소리까지. 형보다 늦게 태어난 게 억울한 꽃차남은 제굴의 방으로 갔다. "형형이 아끼는 거 없애버릴 거야" 하면서 레시피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레시피 노트의 뒷면, 글씨가 안 써진 부분을 골라 찢어냈다. 동시에 제굴의 주먹이 꽃차남에게 나갔다.
제굴은 올해 6월부터 레시피 노트(담임선생님이 무척 신경 써 주심)를 쓰고 있다. 자칭 보물 1호. 노트 스프링이 휘었다고 엄청나게 속상해 했다. 음식 사진을 오려서 붙일 때도 공을 들인다. 그런데 고이 모셔 두지는 않는다. 침대나 책상 위, 거실 탁자나 식탁 위에서 굴러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레시피 노트 찾는다고 난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