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에 도착한 여객선 한림과 비양도를 이어주는 도선 비양호
이재언
제주의 또 다른 섬 '비양도'는 하루에 세 번 밖에 없는 배편 때문에 타지인의 발길이 뜸하다. 머무르는 섬은 아니고 마라도처럼 지나가는 섬이다. 21년 전에 처음 비양도를 방문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의 도선이 다녔다. 이제는 3번으로 늘어났다. 21년 동안 단 한 번의 도선 운항 수가 늘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횟수는 더 늘어난다. 한림항에서 배를 타면 15분 후에 비양도 압개포구에 닿는다. 이곳 해녀들은 수심이 비교적 얕은 선착장 부근 바다에서 전복, 소라, 해삼, 오분자기, 미역, 모자반 등의 해초를 채취한다. 모든 집들이 제주도를 향하여 비양봉을 등에 업고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 본섬을 그리워하듯이 제주의 한림항 쪽을 향하여 포구 근처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터를 잡았다.
소박하고 아담한 작은 규모의 예전 집들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정답다. 골목골목에는 리어카가 있다. 자동차나 경운기조차 한 대도 없다. 유일한 운송수단이 손수레이다. 비양도는 한반도의 최남단 마라도처럼 위치적 특징을 가진 곳도 아니고, 우도처럼 멋진 해수욕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안을 따라서 잘 만들어진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비양도의 자연 풍광과 제주도 서쪽해안을 감상할 수 있다. 해수욕장에 가길 원한다면 바로 건너편의 협재해수욕장과 애월읍에 있는 곽지해수욕장에 가야 한다. 어찌 보면 아무런 특징이 없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도와 마라도와 달리 비양도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오전 첫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해 보면 고기잡이를 나가서 그런지 마을은 조용하다. 마을 어귀에서 그물 손질하는 어부의 모습이 평화스럽고 고즈넉하다. 고기잡이배가 만선으로 돌아오고, 사람냄새가 마을에 물씬 풍기는 그런 섬과는 거리가 멀지만, 잘 만들어진 해안 둘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골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2001년에 완성된 일주도로가 트레킹과 자전거 하이킹을 하기에는 그만이다. 자전거로 30분 정도이면 섬 일주가 가능하다.
우선 섬의 오른쪽으로부터 시작해서 3.5km의 해안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얼마를 가다보면 곧 초미니 학교 비양분교장을 만나는데 학생 3명이 공부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폐교는 되지 않고 있지만 머지않아 사라질 학교가 명맥을 잇고 있었다. 학교지만 가정집처럼 돌담으로 담장을 한 소박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양도는 유독 열대식물인 선인장을 해안 길을 따라 심어 놓았다.
비양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와 만들어진 <펄랑못>이다. '펄낭'이라는 이 호수는 길이 500m, 폭 50m의 초승달 모양의 염습지이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좀 특이하게 생긴 연못인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수위가 달라진다. 과거에 비양도 주민들은 이 펄낭못에서 개흙을 가져와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자연 호수는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비양도를 휩쓸면서 높은 파도가 마을을 덮칠 때 생긴 것이라 한다. 현재는 수백여 종의 각종 염생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법 큰 규모의 습지이다.
이곳은 2005년 배우 고현정의 복귀작이었던 SBS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로 명장면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드라마 촬영 이후에 이 연속극은 유명해졌는데도 정작 비양도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단다. 너무 외진 곳에 있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비양도의 해안 도로에는 갖가지 형태의 특이한 화산석들이 있다.
섬 주위에는 그저 흔해 보이는 용암처럼 생긴 기둥 같지만, 이런 기둥과 주변에 있는 용암기종군은 그 규모와 출현 상태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게 생긴 화산지형이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안내문에 이런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면 제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산바위 정도로 알고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비양분교를 지나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애기 업은 돌'을 만날 수 있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바닷가를 응시하는 여인의 형상이다. 이 돌 앞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한다. 바닷가 한가운데 있는 이 기암뿐만 아니라 코끼리 모양의 코끼리 바위도 보인다. '코끼리바위'는 코 부분이 코끼리를 많이 닮았다. 썰물 때에는 걸어서 코끼리 바위까지 갈 수 있지만 밀물이면 그저 멀리서 사진만 찍어야 한다.
코끼리 바위를 조금만 지나면 드디어 비양도의 최고봉인 비양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조금씩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파란 바다 풍경이 예쁜 모습으로 다가왔다. 계단을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억새풀과 잔디밭이 펼쳐진다. 10월에 억새꽃이 가장 많이 피는데 정말 예쁘다고 한다.
비양도 정상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이 최대의 매력이다. 그래서 가볍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요즈음 무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보이는 분화구이다. 섬에 오르는 곳곳에 대나무 군락이 무성하였다. 비양도를 처음에는 '죽도'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 대나무들 때문이다.
비양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비양봉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30분 정도 지나 정상에 도착하니 비양봉 등대가 정답게 서 있다. 태양열 전지판으로 불을 밝히는데 서귀포 앞에 있는 차귀도 등대와 꼭 닮았다. 정말 작고 귀엽다는 느낌이다. 전망대에 서면 섬의 아담한 포구와 배들이 드나드는 기다란 방파제와 선착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좋아서 하얀 백사장의 협재해수욕장이 선명하게 보인다. 비양도와 금릉과 협재 해안 경치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협재 해안과 금릉에서 바라다 보이는 비양도의 모습, 비양도에서 금릉과 협재 해안과 한라산 풍경은 보통의 수준을 넘는다.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을 이용하면 한림과 제주도 서부권역인 한경면과 애월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뒤로 한라산 모습이 안개 때문에 희미하게 보인다. 섬이 너무 작아서 물이 귀할 텐데 물 사정에 대하여 알아보니 제주도의 부속 섬 중에서 유일하게 본도에서 물을 끌어오기에 사정이 좋았다. 1965년에 협재에서 해저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식수가 공급되어 식수 걱정 없는 섬이다.
비양봉 정상의 쌍둥이 분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