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희훈
[기사 보강 : 17일 오후 7시 2분]17일 오후 4시경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 두 시간 가까이 판결 이유를 설명해 나가던 이동근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의 목소리에 다소 힘이 들어갔다. 말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이 사건 기사는 피해자 박근혜가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정윤회를 만나서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소문을 다룬 것으로, 표현 등은 부적절하지만 내용 자체는 대통령의 업무수행 비판이라는 공적 사안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소문을 보도하는 데에 있어서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계속 서있느라 자세가 흐트러졌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몸을 바로 세웠다. 이때까지 재판부는 그의 2014년 8월 3일자 칼럼이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 정윤회씨를 긴밀한 남녀관계로 묘사,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소문이 돈다고 소개한 내용은 '허위사실 적시'라는 명예훼손죄 성립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이 부장판사가 언급한 대목은 처음으로 가토 전 지국장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가토 전 지국장은 넥타이도 고쳐 맨 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오후 4시 50분, 이번에는 그의 변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비방목적을 인정하기 어렵고, 증거도 부족하다"는 재판부의 설명이 나온 직후였다.
대통령의 명예와 맞붙은 언론의 자유 이날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의 글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퍼뜨려 그의 명예를 훼손한 자'라는 공소사실(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70조 2항)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정윤회씨 등의 법정 진술을 볼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씨를 만나느라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소문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또 가토 전 지국장이 이 소문을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칼럼에 기초해 소개하긴 했지만, 여기에 두 사람의 오랜 인연과 증권가 관계자·정계 소식통 등 제3자의 발언을 더한 것은 마치 소문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소문의 진위를 파악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확인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증권가 관계자' 등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은 박 대통령과 정씨를 둘러싼 이야기는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두 사람을 소재로 칼럼을 쓴 것은 이들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 박근혜'의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대통령은 필요한 모든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그날 대통령의 행적은 공적사안"이라는 것이다.
가토 전 지국장은 이 맥락에서 자신의 칼럼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대처가 어땠는지, 한국 사회의 상황은 어떤지 등을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글을 썼을 뿐, 검찰 주장대로 박근혜와 정윤회라는 개인을 비방할 목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17일 재판부도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당시 대통령이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문제되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글에서) 비판하거나 일본에 전하려고 한 것은 세월호 사고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어떤 남성과 소문이 있는 개인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 첫 문단은 대통령 지지율 추이, 마지막은 '레임덕화가 진행 중'이라는 등 곳곳에 한국 정치상황 평가가 들어갔다"며 "표현방식은 부적절하지만 (기사에서 부각하는) 대상은 대통령으로 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무죄' 선고한 재판부의 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