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 쓰레기 뒤지는 소리, 사람이 있었다

2015년 겨울, 골목길 풍경...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어깨는 무겁다

등록 2015.12.31 11:49수정 2015.12.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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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신의 먹이를 찾고있는 고양이. ⓒ 박정훈


요새 들어 전국적으로 길고양이 풍년이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종종 몰려다니는 걸 볼 때면 화가 날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소방서에 연락해 잡아달라고 하고 싶지만 멈춘다. 혹여나 그 녀석들 잡아다 안락사라도 시킬까봐 마음을 내지 못한다. 잔인한 마음 씀씀이인 것 같아서다.


얼마 전 오후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은 길고양이. 그걸 입에 물고 어디론가 신나게 달려간다. 선물바구니를 든 퇴근하는 가장처럼 의기양양해 보인다. 자신의 입에 무언가를 꽉 물고 달려가는 고양이. 쏜살같은 녀석 앞에 자신의 친구인지 가족인지 모를 한 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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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고양이 ⓒ 박정훈


'저 녀석들도 친구, 가족이 있구나', '그래서 신나게 달려간 거였군' 나의 퇴근 모습과 오버랩되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 녀석들에겐 쓰레기 더미가 천국이나 다름없는 듯 보인다. 다음날 어둑어둑한 저녁. 또다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같은 쓰레기 더미 속 행복한 들고양이와 다른 표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또 고양이 녀석들이군. 쓰레기들을 또 뒤지고 있나 보네.'

이런 생각으로 밖을 내다본다. 반가운 생각에 나가보니…. 고양이가 아니다. 사람이다. 아니 사람들이다.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입김으로 하얀 연기가 보일정도의 날씨에 박스, 폐지를 줍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계신다. 먹이를 찾는 고양이가 아닌, 쓰레기들 틈 속에서 폐지를 찾고 계신 모습. 내가 예상 못한 모습이었다.

"대체 이거 안 치우고 뭐하는 거야? 쓰레기차는 이걸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
"분리수거 안 된거는 치우지 않는다네요. 치우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기로 했다나봐요. 적발된 것만 과태료 부과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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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의 한 동네 전봇대에 붙여진 경고문. 동네사람들의 화가난 감정이 담겨있다. ⓒ 박정훈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칠게 한 마디씩 던진다. 얼마나 쌓여 있었는지 모를 이 쓰레기들은 겨울인데도 쾌쾌한 냄새가 가득하다. 그 특유의 향취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속을 뒤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무 내색도 없다. 누군가의 토사물 같은 음식물쓰레기와 남모를 때가 뭍은 쓰레기 더미에서 폐지만 찾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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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가득 찬 경기 광주의 한 동네 ⓒ 박정훈


사람들의 사나운 말들 뒤에도 그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수레에 채울 수 있는 무거운 폐지를 찾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을 향한 말이 아님을 알지만, 아예 불평하는 것조차 잊으신 듯 뒤적거리신다. 마치 후각조차 없으신 듯 쓰레기 사이를 뒤지며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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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가득 찬 경기 광주의 한 동네2 ⓒ 박정훈


쓰레기 더미 속에 행운과 같은 먹이를 찾고 즐거워하는 길고양이와 달리, 그분들의 표정엔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등만 보이며 묵묵히 폐지를 줍고 있는 그런 모습일 뿐이다.

앙상하지만 유난히 표정 밝던 폐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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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동네 A모 할머니가 종종 주시던 음료수. ⓒ 박정훈


"고마워. 이거라도 하나 묵어."

그속에서 유난히도 표정이 밝은 동네 A 할머니. 가끔 박스나 폐지를 모아 건네드리면 늘 고맙다며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꼭 답례로 작은 음료라도 손에 쥐어주고 가신다. 할머니는 걸음이 불편하시다. 마치 동화책에서 보던 꼬부랑 할머니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틈틈이 폐지를 줍는다. 자식이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찾아오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래도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늘 사람들을 먼저 반갑게 인사로 맞는 폐지 줍는 할머니.

추운 날씨 탓일까? 아니면, 높게 쌓여가는 쓰레기 더미 때문일까? 최근 우연히 본 박스 할머니의 뒷모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폐지 한 장, 박스 한 장 조차 무거워 보이는 어깨. 그 어깨를 간신히 추스르며 자신의 손수레에 무겁게 싣고 계셨다. 고단한 삶처럼 할머니의 손수레 위의 폐지들도 지쳐보이는 듯했다. 그 무겁고 더러운 폐지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더 무거워 보였다.

이제는 성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들 사이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야윈 몸을 분주히 움직인다. 폐지보다 훨씬 무거운 쓰레기더미 속에서 폐지들을 찾는다.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높이가 올라갈 때 마다 할머니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 

가혹한 현실은... 노인들의 후각까지 뺏어가는 걸까

"이거 무슨 냄새야? 한겨울인데도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네."
"당신은 이 쓰레기더미 냄새 안나? 대체 이거 쓰레기 쌓아두고 뭐하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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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가득 찬 경기 광주의 한 동네3 ⓒ 박정훈


폐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가던 곳에는 이제는 쓰레기더미가 가득하다. 쓰레기가 더미로 쌓여갈수록 냄새도 지독해진다. 1개월가량 치워지지 않는 매쾌한 쓰레기들 사이로 사람들의 인심은 메말라 갔다. 추운 겨울 성처럼 쌓인 쾌쾌한 냄새 가득한 쓰레기더미. 그 속을 뒤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에게 동네 사람들의 칼 날 같은 시선이 꽂힌다. 그 가혹하고 날카로운 시선 뒤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한숨이 고개를 숙인다.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의 시대를 견뎌왔을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 고생 많으셨을 그분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폐지를 줍는 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헬조선이라며 대한민국에 좌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묵인하며 존재하는 무력한 젊은이. 그들과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그런 무력한 젊은이들과 쓰레기더미 속 힘없이 서계신 노인들은 다른 얼굴을 한 같은 현실에 서 있었다. 그들과 다른 점은 이제는 성처럼 높게 싸인 쓰레기 더미들보다 더 잔인하고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는 점이다.

종량제 뒤 소외받는 페지줍는 노인들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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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방송에 나온 경기 광주 쓰레기 관련뉴스. 방송화면 캡쳐 ⓒ 박정훈


"파봉을 한 결과 배출자의 인적사항이 확인된 것에 대해 2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5일 jtbc뉴스. 우리 지역 전체가 쓰레기로 몸살인 상황. 이 지역 경기 광주시의 한 공무원이 방송에 나와서 무심한 듯 말한다. 쓰레기를 뜯어서 신원이 확인 된 것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겠노라고. 더불어 광주시는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쓰레기는 수거하지 않으며, 종량제가 정착될 때 까지 이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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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의 한 동네. 과태료 부과를 위해 관공서에서 개봉하여 확인작업을 한 쓰레기. ⓒ 박정훈


그래서인지 아직도 갈 곳 잃은 쓰레기들은 그대로 쌓여있다. 추운 날씨가 지속되 듯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쓰레기들은 어제보다 더 높이 넓게 쌓여있고, 그들이 뜯어본 쓰레기 봉투에는 확인 여부가 표시된 스티커만이 붙여져 있을 뿐이다.

추운 날이 밝았다. 다시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신다. 쓰레기들은 그분들의 삶의 무게처럼 점점 높게 쌓인다. 그 쓰레기더미 높이만큼 올 겨울 그분들의 호주머니도 가득할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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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가득 찬 경기 광주의 한 동네. 쓰레기 더미 옆으로 폐지 줍는 노인 한 분이 지나가고 있다. ⓒ 박정훈


노인들의 퇴근길은 길고양이들처럼 가볍지는 않다. 오늘도 가난한 쓰레기들 속에 가혹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서 있다.

과연, 언제까지. 노인들이 추운 겨울 쓰레기 더미 속을 얼마나 더 뒤져야 하는 것일까?
#경기 광주시 #들고양이 #폐지 #노인인권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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