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에는 역시 감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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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엄마와 서울나들이를 가면 가끔 아빠가 운전하시는 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는 제 차지였지요. 그때는 버스마다 머리에 동그란 모자를 쓰고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차장언니가 있었지요.
차장언니의 "오라이~~" 소리가 들리면 요술처럼 커다란 버스를 움직이게 만드는 아빠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단해보였습니다. 당시 제 꿈은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의 차장언니가 되는 것이었죠. 어느 순간 차장언니들이 사라져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긴 했지만요.
아빠가 쉬는 날, 집으로 오시는 날은 카레를 먹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늦둥이 어린 딸을 위해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직접 카레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빠가 어디에서 카레요리를 배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손수 야채와 돼지고기를 다듬어 카레를 만드셨지요.
제법 덩치가 크셨던 아빠가 어린 딸내미 먹인답시고 방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다듬던 뒷모습이 아련하게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아빠가 카레를 만드실 때면 천방지축 윗동네 아랫동네로 뛰어다니느라 온종일 집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날이 허다했던 저도 아빠 곁에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카레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답니다.
나의 '카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사실 아빠의 카레가 어떤 맛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레가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신이나서 동네방네 '오늘 카레 먹는다"라면서 자랑하고 다녔지요. 때로는 동네아이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했고요.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이었죠.
늦둥이딸을 위해 카레를 만들면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우리 오빠)을 낳고, 14년 만에 낳은 딸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카레는 아빠가 늦둥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요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카레를 해줄 때면 늘 아빠가 생각나 흐뭇하면서도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 않음이 서글퍼집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카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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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나는 아빠표 카레, 덩달아 나도 어깨가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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