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쿠데타의 발상지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피터 헤이즈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장이 CIA가 공개한 문서를 토대로 박정희의 핵개발 과정을 정리한 글이 있다. <글로벌 아시아> 2011년 가을호에 실린 이 글의 제목은 '박정희, CIA 그리고 핵폭탄'이다.
두 학자의 글에 소개된 CIA 비밀문서에 따르면, 박정희가 각료들과 함께 핵무기 개발을 논의한 것은 1969년부터다. 베트남 전쟁에서 수렁에 빠진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대한 적극 개입을 기피하고 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자, 박정희는 미국이 결정적 순간에 한국을 돕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품게 되었다. 그런 우려가 자주국방의 필요성 인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핵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나선 것은 1974년부터다. 핵무기 전용 미사일 개발을 위한 '890계획'이라는 비밀 작전도 이때부터 전개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핵개발 포기를 압박하는 데다가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재생되자, 박정희는 핵개발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 해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쪽 초소를 잘 관찰할 목적으로 미군이 도끼로 포플러나무를 베려 하자, 북한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도끼를 빼앗아 미군을 살해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을 압박할 목적으로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한편, B-52 폭격기를 매일 출격시켰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맞서 지난 10일 오산 비행장까지 왔다가 돌아간 B-52 폭격기가 그때도 왔었던 것이다.
B-52 폭격기의 등장은 김일성을 압박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박정희를 감동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2016년 1월 10일 박근혜가 봤던 그 폭격기를 보면서, 40년 전의 박정희는 미국에 대한 신뢰감이 되살아났다. 결정적 순간에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1976년 하반기에 핵개발을 중단시킨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신뢰는 얼마 가지 못했다. 1977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민주당 출신의 지미 카터가 박정희를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카터는 취임 1주일도 안 된 시점에서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서 철수하는 계획을 추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문정인·헤이즈의 글에 따르면 이에 대한 반발로 박정희는 중단했던 핵개발을 재가동했다.
그러나 2년 뒤인 1979년, 박정희가 암살을 당하고 부하였던 전두환이 미국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핵개발은 끝나고 말았다. 물론 김재규의 배후에 정확히 누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죽기 전까지 핵개발을 추진한 점을 보면 박정희가 핵무기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핵에 대한 박정희의 집착은, 유신체제를 혐오하는 재미동포 학자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에 대한 열렬한 러브콜에서도 나타난다. 이휘소가 한국 핵개발에 관여했다는 명확한 확증은 없지만, 박정희가 핵개발을 목적으로 그에게 보통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고 접근을 시도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박정희 시대의 외교정책에 깊이 개입한 이동원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박정희는 핵개발을 막는 미국을 두고 "쳇 지들은 맘대로 하면서 왜 우리 보곤 만들지 말라는 거야"라고 불평하면서 "이휘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휘소에게 "한국을 위해 일해달라"며 "이 박사가 돌아온다면 60만 대군 모두를 이 박사 경호를 위해 쓰겠소"라는 의사까지 피력했다고 한다.
월간 <말> 1993년 6월호에 따르면, 이휘소는 서울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두 아이의 취미를 아셨는지 아들에게는 한국 우표를, 딸에겐 전통 무용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라고 썼다. 개인적 친분도 없는 이휘소에게 한국 우표와 전통 무용책을 선물했다는 것은, 박정희가 정보 조직을 가동해서 이휘소 자녀의 취미까지 탐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가 이휘소라는 천재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했음을 의미한다. 이휘소의 전공이 정확히 핵개발과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는 이휘소의 천재적 물리학 지식이 핵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듯하다.
박근혜의 진정한 의중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