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파행, 이제 학부모들이 일어설 때

[주장]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해마다 같은 일 되풀이될 것

등록 2016.01.19 09:50수정 2016.01.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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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을 두고 다들 할 말이 많다. 말을 들어보면 이 말도 그럴 듯하고 저 말도 고개 끄덕여진다. 절실한 부모 처지에서야 정부가 되든 시도교육청이 되든 누구라도 먼저 학비와 보육료를 감당하겠다고 선뜻 말해주면 좋겠는데 남탓만 하고 몰라라 하니 희망은 바닥나고 애간장은 다 녹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영 교육부차관이 서울신문에 기고한 <교육감의 책임 있는 응답 기대한다>(2016년 1월 18일치)는 글을 읽었다. 그는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어디를 가든 생애 첫 출발선에서 수준 높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우리 아이들에게 보장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그리고 필수적인 투자'라고 뜻매김했다.

 

이 말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시도교육청과 일부 시도의회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거나 없애버리면서 국민의 불안을 초래했다고 책임을 떠넘긴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이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만큼 돈이 있다고 하지만 시도교육청들은 현실을 모르는 억지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일테면 예산 편성을 거부한 강원도교육청을 보자. 강원도교육청의 총 예산 규모는 2조3805억 원이다. 이 가운데 69%가 인건비고, 학교운영비 7.2%, 시설사업비 1.5%, 기관운영비 0.5%로 대부분 쓰임을 바꿀 수 없는 경비들이다. 그나마 줄일 여지가 있는 예산이 교육사업비 600억 원(2.5%)인데 이를 줄이라는 말은 초·중·고 교육에 쓸 돈을 빼서 누리과정에 쓰라는 말이다.

 

잘 알겠지만 시도교육청은 이제까지 공립유치원과 초·중·고 공교육을 책임져왔다. 당연히 예산도 공립 유치원과 초·중·고 교육에 써야 옳다. 하지만 누리과정 예산은 애초에 없던 사업을 대통령의 약속으로 시작해놓고 어물쩍 시도교육청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사업 아닌가.

 

정부는 시도교육청에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육부차관의 말만 보면 누가 부담해야하는지 또렷해진다. '생애 첫 출발선에서 수준 높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했다. 실제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집에서 '국가책임보육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정부 지원은 없었다.지난해 10월엔 지방재정법시행령을 고쳐 시도교육청에 예산 지원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의무지출 경비로 편성하라는 조항은 상위법인 법률에는 없고 그 아래 시행령에만 있다. 어린이집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따른 의무교육 대상으로 한 것도 2011년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고친 것이다. 법률은 국회에서 개정해야 하는 까닭에 정부 입맛대로 행정입법으로 쉽게 뜯어고쳤다. 정부조직법에도 어린이집 관할은 보건복지부 아닌가.

 

백 걸음 물러나 시도교육청이 쪼들리는 형편에 누리과정 예산을 떠안았다고 해보자. 이는 학교 다니는 큰아이 교육비를 줄여 작은애 어린이집 보내는 격으로 큰아이 교육은 소홀해지고 말 것이다. 초∙중등 교육에 써야할 예산이 깎이면서 초∙중∙고 아이들의 학습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때 죽어나는 것은 학부모인데 왜 학부모들은 행동하지 않는가. 왜 분노하지 않는가. 더구나 그 목소리를 정작 들어야할 쪽은 대통령이고 교육부장관인데, 엉뚱한 시도교육감한테 고발하고 책임지라고 하는가. 아이를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는 게 과연 누구인가.

 

지금이라도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진절머리만 내지 말고 당당히 나설 때 변화가 일어나고 실천이 만들어진다. 대통령의 약속이었으니 정부가 나서서 책임있게 응답하라고 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야 한다. 옳지 않으니 바꾸라고 말해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같은 일은 해마다 되풀이될 것이다.

2016.01.19 09:50 ⓒ 2016 OhmyNews
#누리과정 #학부모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부조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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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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