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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년이 본 <그날의 분위기>는 괴이했다

[리뷰] 이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닌 세가지 이유

16.01.21 11:07최종업데이트16.04.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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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원, 유연석 주연의 영화 <그날의 분위기> 포스터. ⓒ (주)쇼박스


먼저 올해 마흔여섯이 된 미혼 사내의 고백 두어 가지.

나는 '불금'과 '화토'가 불타는 금요일과 화끈한 토요일을 의미한다는 걸 지난해 가을에서야 정확하게 알게 됐다. 그뿐 아니다. '운널사', '너목들', '치인트' 등 각종 TV드라마의 제목을 줄여서 만든 신조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응팔>(응답하라 1988)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된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 역시 없다.

인간이 아닌 머플러나 원피스를 두고 "어머, 쟤 너무 귀엽다"고 한다거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나 개를 지칭해 "우리 예쁜 아기"라고 부르는 걸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해괴하게 느껴진다.

교복을 입고 거리에서 보란 듯이 입을 맞추는 학생들을 보면 끌탕을 하고, "요즘 중학생들은 우리가 보는데도 복도에서 손을 잡고 다녀요"라는 친구 여동생(교사)의 말에 경악했던 사람이다. 내가 봐도 변화하는 시대에 재빠르게 발맞추는 세련된 40대라고 보기엔 어렵다.

2016년 청춘들의 연애방식이 궁금해 선택한 영화였는데...

1980년대 로맨스소설과 별 다를 바 없는 낡은 방식을 사용해 만든 탓인지, <그날의 분위기>에선 설렘도 웃음도 얻어내지 못했다. ⓒ (주)쇼박스


이제 청춘이라고 우겨봐야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그렇다고 '청춘의 특권'이라 할 낭만적 사랑과 아기자기한 연애의 꿈까지 버린 건 아니다. 문채원과 유연석이 주연한 로코(이게 '로맨틱코미디'의 줄임말이란 것도 최근에 알았다)를 선택해 영화관에 들어갔던 건 영화를 통해서라도 요즘 청춘들의 연애방식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이것 참... 뭐라고 관람평의 서두를 꺼낼지가 곤혹스럽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영화 속 청춘남녀 수정(문채원 분)과 재현(유연석 분)은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고 아름답다. 화면 속 둘의 모습도 근사하게 어울린다. 그러나, <그날의 분위기>에 관한 좋은 이야기는 이것 이상 쓰지를 못하겠다. 아니, 쓸 것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그날의 분위기>는 중년의 고루한 아저씨도 웃기지 못했고 설레게 하지 못했다. 현시대의 젊은 트렌드와 연애패턴을 읽어낼 코드 하나 보이지 않는 고루한 1980년대 텔레비전 단막극 같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이게 무슨 로맨틱코미디인가? 관객모독극이지. 아래는 짤막하게 적어보는 <그날의 분위기>가 좋은 영화가 아닌 이유 3가지다.

온통 우연, 우연, 우연

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설정을 '우연'에 기대고 있다. 그런 이유에선지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주)쇼박스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두 남녀가 출장 중에 '우연히' 기차 안 좌석에 나란히 앉게 된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여자에게 친절을 베푼 남자는, '우연히' 고장이 나버린 기차 탓에 아주 '우연하게' 여자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둘은 자신들이 기차를 탔던 이유가 같았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이에 친밀감을 느낀다. 어느 정도의 감정적 줄다리기를 통해 서로에게 마음이 통한 남녀는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몇 가지 '우연한' 사건을 겪은 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그날의 분위기>의 줄거리는 누구라도 예측이 가능한 낡고 낡은 패턴이다. 그렇기에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다. 내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 여중생들이 읽던 <하이틴 로맨스>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틀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영화의 10분 후와 1시간 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데, 그걸 보고 어떤 관객이 설레겠나.

능글맞게 여자를 유혹할 때나, 여자와 함께 사랑을 나눌 때나, 여자에 관한 안타까움을 드러낼 때나, 유연석의 표정은 한결같다. 입꼬리에서 보이는 미세한 다름이 있었을까, 눈빛과 표정에선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하는 여자의 복잡한 심경을 보여줘야 하는 문채원 역시 연기의 포인트를 잃어버리고 헤맨다. 그러니,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건 관객 탓이 아니다.

위의 두 문제보다 심각한 건 영화가 온통 '우연'만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1940년대 후반 유럽 사상가라면 "인간은 우연히 이 땅에 떨어져 무상하게 세계를 견디는 존재"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매료됐다고나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밀착된 영화라는 장르, 그것도 보면서 즐거워야 할 로맨틱코미디를 만들면서 철학용어처럼 느껴지는 '우연'을 왜 이렇게나 많이 영화 곳곳에 지뢰처럼 깔아놓은 것인지. 그 우연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고, 동시에 허술해 보이게 한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진짜 궁금한 것

그런 까닭에 <그날의 분위기>를 연출한 조규장 감독을 보면 물어보고 싶다. "우연성과 무상성을 말한 사르트르가 자신의 작업에 있어선 얼마나 정치(精緻)하고 주도면밀했는지 아느냐"고.

그런데, 이쯤에서 글을 맺으려니 갑자기 떠오르는 걱정 하나. 혹시, 내가 <그날의 분위기>를 보고 웃거나 설레지 못한 건 '불금'과 <응팔>도 몰랐던 조로한 40대 중년인 탓이 아닐까? 20대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크게 웃고 많이 설렜을까? 그게 궁금하다.

그날의 분위기 문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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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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