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열린 1215번째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선대식
[기록④] 여중생의 용기
"전라도서 끌려온 명자 언니 죽을 때 삼단 같은 머릿단 잘라내어 보에 싸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언니들 따라 부른 노래 반 울음 반 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 걸음 바로 못 걷던 명자 언닐 안고 들어 위안소 언덕 위에 가슴앓이와 함께 묻고 돌아와 그 밤도 찬물로 아랫도릴 식히며 울었어요."500여 명이 참여한 1월 27일 낮 1215번째 수요시위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30여 년 전에 쓴 시 <죠센 데이신따이>(조선정신대)의 일부를 낭독했다. 열여섯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배옥수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담은 연작시다.
중학교 2학년생 이예린(15)양은 이 시에 눈물을 훔쳤다. 기자에게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간 나이가 지금 제 나이라서, 감정이입이 됐다"라고 했다. 예린양은 수요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서 혼자 왔다. 엄마가 걱정했지만, 예린양은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요새 보통 집에 있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제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껴졌어요. 페이스북을 보고 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나왔어요. 정치에 무관심한 '쿨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수요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온 걸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어요."예린양은 수요시위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학생 언니오빠들과 거리에서 밥을 먹고, 소녀상 옆에서 몇 시간이나 꼼짝 않고 팻말을 들고 섰다.
'강제적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합의를 강요하는 나라. 자격 없는 나라. - 역사를 덮으려 한 죄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예린양은 어둑해질 때야 팻말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예린양의 뒷모습은 참 커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