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버리라"는 메시지에 열광할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로 본 우리 사회

등록 2016.02.11 15:16수정 2016.02.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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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 그리고 <심플하게 산다>에서는 물건을 정리하라고 한다. 김정운 교수의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와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는 관계를 정리하라고 한다. 정확히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정돈하는 기회를 제안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생각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생각 버리기 연습> 1, 2). 사물, 사람 그리고 생각까지 어째서 그들은 우리에게 이토록 버릴 것을 제안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째서 버리라는 그 모든 메시지마다 베스트셀러로 응답할까? 그들은 버리리 하는데 버리라는 책만 책꽂이에 열 권이 넘는 이 아름다운 역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지음·김윤경 옮김·비즈니스북스·276·1만 3800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지음·김윤경 옮김·비즈니스북스·276·1만 3800원)비즈니스북스
인간은 발산하는 존재다. 정확히는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과 그로부터 생기는 부산물이 쉼 없이 쌓이는 더깨의 존재다. 이러한 존재들에게 버리고 정돈하는 일은 스스로를 중화하려는 본능적인 욕구의 일환이다.

이는 첫째로 버리고 정리하는 작업이 유난스럽게 분석의 대상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며 둘째 '최초의 미니멀리스트란 누구일까? 혹은 최초의 미니멀리즘은 무엇일까?'와 같은 우문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금 트렌드와 같은 환원주의적 성격의 미니멀리즘을 사조의 형태로 처음 갖기 시작한 것은 추상화가 피트 몬드리안이 주도한 데 스틸(De Stijl)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이론은 독일의 조형학교 바우하우스에 영향을 주었고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은 덩굴이 꾸불거리는 아르누보 양식에 맞서 말 그대로 미니멀한 가구 제작과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냥 옷가지 몇 개와 잡동사니를 버리라는 책을 읽는데 무슨 바우하우스며 몬드리안이 튀어나오는지 의아할 것이다.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라는 미니멀리즘 사조의 강령은 매우 직관적이라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회화, 디자인, 문학 등 미니멀리즘이라는 현상은 각각의 영역에서 분기점이 되는 위치에서 등장했다.

즉 미니멀리즘은 종착역이 아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 그것은 완성적 모습이 아니고 이는 대다수의 우리가 미니멀리스트로 끝까지 남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타 문예 사조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의 선례를 살펴보는 것은 최근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선 미니멀리즘을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다.


잡동사니, 인간관계, 잡념까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버리고 그만큼 자신의 삶을 넓게 혹은 깊게' 영위하라는 말이다. 이는 사실 기존에 있던 '선택과 집중'을 물리적으로 치환한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그저 버리고 비우라는 행동 양식에 유별한 스타일이 새로이 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사실 그것이 현대인이 미니멀리즘에 환호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는 과잉의 존재다. 외압(Stress)이 많고 이로 인해 생각이 많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고 들을 여유는 부족하다. 그래서 틈만 주면 꼰대처럼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으려는 인문학자들의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깔끔한 인터페이스로 내 얘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채널(SNS)은 환대받는다.


우리는 하루 종일을 누군가에게 훈계 받거나 결핍의 존재라며 교육 받는다. 온 국민이 지금의 상태에서 나아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무언의 채찍에 하루 온종일 등짝을 두드려 맞는다. 강박에 쫓겨 꾸벅꾸벅 졸면서도 이어폰으로 영어 회화를 듣는다.

또 힘들게 번 돈으로 만고의 진리를 전해줄 철학이나 인문학 도서가 아닌 내가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는 컬러링북(Coloring Book)을 사곤 한다. 우리가 멍청해서, 혹은 돈 귀한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이 배우고 너무 힘들게 벌어서 색칠 공부 책이나 사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미니멀리즘의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미니멀리즘에 응답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현대 미술사에서도 도널드 저드나 칼 안드레와 같은 미니멀리즘이 미술사를 지배했던 시기는 길지 않았으며 실제로 저드는 살아생전 자신의 예술이 미니멀아트로 불리는 것에 꽤 불만을 가졌다.

  <비밀의 정원>(조해너 배스포드·클·96쪽·1만 2000원)
 <비밀의 정원>(조해너 배스포드·클·96쪽·1만 2000원)

지난해 12월까지 종로 리안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던 미니멀리즘의 대가 프랭크 스텔라 역시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미니멀리스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자신들 역시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니멀리즘의 영향력이 약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더니즘 회화의 절대적 대변인을 자처하는 미국의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끝까지 미니멀리즘 아트를 모더니즘의 결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전시장에 쌓은 벽돌이나 정체모를 상자들(Specific Object)은 그린버그식 모더니즘 회화가 강조한 특유의 평면성을 극한으로 관철시킨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2차원의 공간성에 집착했던 대비평가는 자신의 이론이 빚어낸 기괴한 오브제들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 했고 자신 이론의 모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니멀리스트들은 평면성이라는 답답한 울타리를 내부로부터 부순 영리한 사생아들이었으며 그렇게 미니멀리즘을 마지막으로 미술은 모더니즘의 문을 닫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간다.

결국 우린 수렴이 아닌 발산하며 나아가는 '더깨의 존재'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이 풍성한 화면을 불러왔다. 루벤스, 앵그르와는 무언가 달랐지만 적어도 바닥에 쌓인 벽돌을 지나치며 "작품이 어디 있다는 거야?" 하며 화이트큐브를 기웃거리게 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우리의 방도 결국 다시 쌓일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다. 누군들 깔끔하고 단정한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 않겠는가. 아무리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도 어느 샌가 마감 기한 내일까지인 서류가 내 방 책상을 불쑥 덮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머니의 김치가 불쑥 택배로 올라오며 계획에도 없던 사랑이 갑자기 찾아와 방 한 켠 그로부터 건네받은 물건이 수북해 질 것이다.

생각해보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념일마다 "미안한데 난 미니멀리스트야. 불필요한 물질이 아닌 사랑은 마음만 받을게"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큰 곤욕일 것이다.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깔끔하고 유리한 온실 속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받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불편한 잡념으로 언제라도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때마다 모든 것에 앞서 우리가 더깨의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방은 오히려 전보다 더 빨리 수북해 질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비우라'는 주제의 책이 등장할 때면 우린 작가들을 배신하지 않고 어김없이 베스트셀러로 추어올린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를 최소화하려는 욕구가 결코 우연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이 삶의 매순간을 지탱하는 행동양식일 수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인 도구나 알약처럼 여겨야한다. 약물에 의지한 채 나아갈 수는 없다. 주변의 것을 모든 것을 버리거나 버리지 말아야 하는 두 프레임에 가두기 시작하면 우리는 스스로 제 몸이 접촉하고 있는 주변 세계를 잠식하다 결국 궤멸하는 구도로 전락할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더불어 발산하는 존재며 결국 잘 쌓아야 행복해지는 더깨의 존재라는 것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미니멀리스트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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