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건물 입구 벽에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 그림이 걸려 있다.
송성영
학교 건물 입구 벽에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에 성인들을 새긴 종교화의 그것처럼 둥근 원, 후광을 그려 넣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과 사방 벽면에 힌두교의 신으로 짐작되는 형상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인도의 학교를 비롯한 공공시설물에서 힌두교의 신이나 마하트마 간디는 쉽게 볼 수 있지만 고오타마 붓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문시아리에서 내가 확인한 것만 해도 힌두사원이 세 군데나 있었다. 하지만 불교 사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힌두교 사원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마을에서 특히, 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인 학교에 고오타마 붓다를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혹시나 싶어 학교 선생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그려져 있는 저 그림은 고오타마 붓다가 맞습니까?""예 맞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시아리 학교에서 붓다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힌두교에서는 고오타마 붓다를 인도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쉬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여기고 있다. 거기다가 문시아리는 역사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 문시아리는 고대시대부터 티베트와 인도의 소금 교역로였다고 한다. 인도 땅이기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티베트인들이 소금교역로인 이곳을 오고가며 생활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의 얼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교 사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학교 건물에 고오타마 붓다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티베트 사람들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를 함께 모시는 것은 분명 이 학교의 교육이념과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제도, 카스트 계급을 거부했고 두 사람 모두 남존여비사상이 깊이 박혀 있는 인도에서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고자 했다.
힌두교의 카스트는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족·무사), 바이샤(평민), 수드라(하층민) 등 4개로 구분되며, 카스트 계급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하리잔, 불가촉천민이 있다. 석가모니는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힌두교와 달리 현세의 계급에 상관없이 수행을 통해 여성이나 천민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의 굴레,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초기 불교 경전으로 알려져 오고 있는 숫타니파타(Suttanipata)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브라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인도의 국부로 칭송받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 또한 카스트 제도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살아가는 하리잔, 불가촉천민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며 카스트 제도 철폐에 힘을 쏟았다.
이 학교 건물 입구 좌우에 새겨진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의 그림 위에 "come to learn. go to serv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직역하자면 '이곳에 와서 배우고 나가서 봉사하라'라는 뜻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나름 해석하자면 붓다와 간디의 가르침이 그러했듯이 '진리를 깨달아 자비를 베풀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비심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길이다. 모바일 번역기에서 '진리'와 '자비'라는 단어를 찾아내 학교 선생에게 내 뜻을 말했더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