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흙탕물로 목 축이는 아이들

물 부족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해결도 난망

등록 2016.02.16 09:27수정 2016.02.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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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 작은 물통을 들고 물을 길어 오는 투르카나 부족 아이들. 이 아이들은 물을 얻기 위해 매일 몇 km를 오가야 한다.
저마다 작은 물통을 들고 물을 길어 오는 투르카나 부족 아이들. 이 아이들은 물을 얻기 위해 매일 몇 km를 오가야 한다.지유석

 건기라 강바닥은 메말랐다. 이에 투르카나 부족은 강바닥을 파 물을 얻고 있었다.
건기라 강바닥은 메말랐다. 이에 투르카나 부족은 강바닥을 파 물을 얻고 있었다. 지유석

지난 2007년 즈음 어느 국제구호기구에서 100시간 넘게 봉사활동을 수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임무는 아프리카에 있는 후원아동이 한국의 후원자에게 보낸 영문 편지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후원아동들이 보낸 편지에서 거의 예외없이 등장하는 사연 중 하나는 '엄마를 도와 물을 길어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한국의 후원자들은 후원 아동이 기특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지 아이들에게 물 긷는 일은 한국처럼 부엌에서 수도꼭지 틀어 물 받아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어린 아이들은 물을 긷기 위해 물통을 들고 몇 km를 걸어 갔다가 와야 합니다. 유니세프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물을 얻으려면 하루 평균 6km의 길을 오가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케냐 방문 기간 동안 그 실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서신을 번역하면서 아이들이 물 긷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릴 때마다 아려왔는데, 직접 보니 마음이 더욱 아팠습니다.

 건기라 강바닥은 메말랐다. 이에 투르카나 부족은 강바닥을 파 물을 얻고 있었다.
건기라 강바닥은 메말랐다. 이에 투르카나 부족은 강바닥을 파 물을 얻고 있었다. 지유석

 다른 편에서는 웅덩이 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다.
다른 편에서는 웅덩이 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다. 지유석

투르카나 부족이 사는 나남 마을을 찾았을 때 일입니다. 마을 어귀엔 강이 흐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상 건기라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강은 흔적만 있을 뿐 바짝 말라 있습니다. 부족민들은 물을 얻고자 강바닥을 파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눈으로 보기에도 흙탕물이었습니다. 부족민들은 흙탕물이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아이는 그 물을 들이켰습니다. 정말이지 아연실색했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반대편에선 또 다른 웅덩이를 파는 일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같으면 유치원에 다닐 어린 아이가 바가지로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게 물 긷는 일은 아녀자 혹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데, 물 웅덩이 파는 일까지 아이들이 도맡아 하니 문득 '이 부족 남성들이 하는 일은 무언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광경은 비단 나남 마을에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 부족, 질병으로 직결... 해결도 쉽지 않아

 한 투르카나 부족 아이가 강 바닥에서 길어온 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 깨끗하지 않은 물로 인해 설사, 장티푸스, 콜레라 등 각종 풍토병이 기승을 부린다.
한 투르카나 부족 아이가 강 바닥에서 길어온 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 깨끗하지 않은 물로 인해 설사, 장티푸스, 콜레라 등 각종 풍토병이 기승을 부린다. 지유석

물 문제는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케냐를 비롯한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 국민들은 배탈, 설사,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각종 풍토병에 시달립니다. 이 같은 풍토병은 따지고 보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생기는 질병입니다. 이런 이유로 깨끗한 물은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의 숙원사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입니다. 유니세프나 유엔식량계획 같은 국제기구 역시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회간접 자본의 미비는 물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만듭니다. 나남 마을엔 우물이 있었습니다. 부족 추장은 몇 년 전 이 우물이 말랐다면서 현지에서 선교활동 하는 공인현 선교사에게 우물을 다시 파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국제구호기구나 생색내기 좋아하는 종교단체가 이런 사연 들으면 귀가 솔깃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 적어도 현지 상황을 감상적으로 포장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 현지에 우물을 파는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케냐로 논의를 한정시켜보겠습니다. 우물을 파려면 먼저 케냐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정부가 지정한 실사단이 현지실사에 착수해야 합니다.


실사 결과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굴착 작업을 수행할 중장비가 나남 마을까지 오려면 비포장 도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투르카나 지역의 경우 길이 워낙 위험해 중장비가 도로에서 전복될 위험성은 감수해야 합니다. 케냐 정부가 발벗고 나서 비포장 도로를 정비해 주면 이런 고민은 시원스레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은 고개를 내젓습니다. 공인현 선교사도 "사역을 명분으로 손댈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비록 물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지만 미소만큼은 해맑다.
비록 물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지만 미소만큼은 해맑다. 지유석

피부색에 관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케냐를 비롯한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이 같은 권리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회 기반시설의 낙후와 내전,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 정치의 난맥상은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조금 심한 표현이지만 차라리 메마른 대지에 시원한 비를 뿌려줄 '레인메이커'가 나타나 주기만을 바라는 편이 더 나아 보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아랑곳 없이 아이들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생수가 담긴 작은 물병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합니다.
#케냐 #투르카나 #유니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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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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