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날씨에도 흙놀이를 하느라 바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보금자리'를 잘 가꾸자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최종규
낮볕이 덥다던 아이들은 "아버지, 오늘 봄이야? 겨울 맞아?" 하고 묻습니다. 밤바람이 차다는 아이들은 "아버지, 아직 겨울이야? 봄인데 왜 이리 추워?"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을 뿐 딱히 아무 말을 안 합니다. 조금 뒤 "네가 스스로 생각해 봐." 하고 말합니다. 달력에 적힌 숫자 말고 우리 몸으로 느끼는 날씨하고 철을 생각해 보면 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날씨를 알려주는 방송으로는 봄인지 겨울인지 알 길이 없어도, 우리가 스스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결을 느낄 수 있으면 오늘 이곳이 어떤 날이며 철인지 알 테니까요.
눈을 감고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서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둘레에서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번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스스로 이녁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려 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우리 시골집에서 마주하는 바깥소리 말고 우리 마음속 노랫소리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자, 자, 이제 손발낯 씻고 자리에 누워야지?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 신나게 꿈나라를 날아야지?
이부자리를 반반히 깝니다. 아이들을 눕힙니다. 이불깃을 턱 밑까지 여밉니다. 토닥토닥 달래니 어느새 두 아이 모두 곯아떨어집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합니다.
거울 속의 내가 / 거울 밖의 나를 / 탄식하며 고개 돌린다 / 거울 밖의 나는 / 거울 속의 나를 / 무섭고 낯설어 / 고개 돌린다 (거울 앞에서 1)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다 // 문 앞에서 맴돌다 / 놓쳐버린 막차 (일생 2)밤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올 무렵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언제 일어나든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늘 내가 일어나야 할 때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다시마도 알맞게 끊어서 불려 놓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서 재잘거리며 놀다가 배가 고플 즈음 되면 찬찬히 밥을 지어야지요.
내가 짓는 하루는 내가 새롭게 쓰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아흔 해를 걸어오며 적바림한 공책은 "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라 하지만, 그 '낙서'란 바로 '숱한 이야기'이리라 느낍니다. 그때그때 휘갈긴 글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새삼스럽고 기쁜 숨결로 맞이한 하루를 가만히 적바림한 글이라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삶자리를 가꾸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이 꿈을 키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구자고 다짐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언제나 이 자리에서, 웃음이 퍼지는 웃음자리를 누리고, 노래가 흐르는 노래자리를 누리며,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자리를 누리자고 생각을 다스립니다. 내 "든 자리"를 고이 돌보는 마음이 된다면, 나는 오늘 이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지음,
문학동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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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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