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강을 건너가 길을 잃었다.
이성애
메디치 가문에서 피렌체시가 외부로 작품을 반출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기증한 것들이 있다는 우피치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6, 7층 건물들의 간격은 매우 좁았다. 그랬기에 건물 사이로 난 골목으로 햇빛을 피해 걸어 다닐 수 있어 7월의 여행자에겐 더없이 좋았다.
여행 책을 가져오지 않아 갈래길 앞에서 잠시 멈췄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단발머리의 중년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느닷없는 나의 도움 요청에 음악 감상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우피치'란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그 여성과 시에스타를 위해 가게 문을 내리던 현지인까지 그것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다 지도 한 장 없는 나를 위해 그녀는 가방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천천히 지도를 펴는 그녀를 도와주려고 낚아채려는 순간 그녀는 '잠깐 기다려봐, 천천히 펴야지'란 액션으로 아주 천천히 지도를 폈다.
어느 곳엘 가든 반나절이 못 돼 지도가 꼬질꼬질, 꼬깃꼬깃하게 만드는 내 손이 나쁜 손이라면 그녀의 손은 정말 착한 손이었다. 속도만 조금 늦춰도 고상해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눈은 지도에 꽂은 채 입으론 '우'자로 시작하는 뭔가를 계속 되뇌고 있을 때 순간 눈에 알파벳 'U'로 시작하는 우피치 미술관이 들어왔다. 내가 이것이라며 반가워 손으로 가리키자 그녀는 '우피치'라고 발음하고 현지인은 '우피찌'라고 발음했다. 그곳에 간다는 그녀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시원한 그늘을 찾아 간간이 들어오는 자동차를 피해 걸어 올라갔다.
일단 배 속을 든든히 한 후 기분 좋게 다비드와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격이 적당해 뵈는 길가 식당에 앉았다. 난 피자, 아이들은 애플파이 같은 빵, 남편은 샌드위치를 골랐다. 관광지 물가가 비싸기에 우린 돈을 아낄 요량으로 좀 저렴한 메뉴를 골랐다. 아이들이 애플파이를 먹다 내려놓고는 내 피자에 입맛을 다시기에 좀 맛보라고 주었더니 아예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 직사각형 작은 피자 하나를 시켜주었다. 그곳은 어느 호텔 앞이라 호텔을 드나드는 여행객, 시중드는 벨보이, 택시 기사를 구경하며 비교적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가 그늘에 섰고 계산을 하던 남편이 직원과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다 돈을 낸다. 그리고 화장실로 발길을 돌리는가 싶더니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은 자리에 앉아 먹으면 표시된 음식 가격의 2배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탈리아. 너 어쩜 좋니?"가격표 옆에 그것을 제대로 공지 하든가 어쩌든가 하지. 남편의 반응에 무덤덤한 종업원을 보니 '약간의 불미스런 마찰! 그러나 두 번 보지 않을 관광객! 무엇보다 두 배의 마진!'을 구호로 다년간 가게를 운영해 온 듯하다. 기분이 언짢아 화장실 사용도 안 한 남편은 여러모로 심신이 묵직해 보인다.
"그런 영업방식을 하는 이탈리아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해!"친퀜테레 도보 여행에서 안일한 인포메이션 직원의 안내로 허탕을 크게 친 후 얻게 된 불신과 업신여김의 마음을 함께 얹어 열을 냈다. 입에서 불이 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 부흥기의 유물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학교 다닐 때 '르네상스'는 '인문 문예 부흥' 비슷하게 외웠던 것 같다. 사실 그때 외운 지식은 내재적 지식이 아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이해했던 외재적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점점 '신', '종교', '인간', '사회' 등을 주제로 생각을 하면서부터 르네상스 시기가 얼마나 인간에게 달콤한 시간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나 짜릿한 전환점이었던가를.
그랬기에 골목의 끝에서 그늘이 나를 비교적 넓은 광장으로 등 떠밀어 놓았을 때도, 확 불어난 관광객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을 때에도 눈에 들어온 많은 조각품들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나를 닮은, 나의 신체 크기와 비슷한 작품이 '인간'을 대표해서 우리보다 한 길, 또는 훨씬 높은 곳에서 많은 이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역시나 책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줄을 서는 것은 거의 100%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은 옳았다.
줄은 길었고 우피치 미술관을 보기 위해 그 정도 줄을 서야 함은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지불한 주차 시간이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왕 배짱을 부렸으면 그냥 갈 때까지 가 봐도 좋겠단 생각을 해보지만 문제는 스페인에서 '견인의 추억'이 있는 우린 줄어드는 줄을 보며 찝찝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우피치 미술관 줄의 중간에서 이탈해 주차장으로 서둘러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