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계산하려니 돈 2배 내라는 관광지 식당

[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35] 이탈리아 피렌체

등록 2016.02.22 09:50수정 2016.02.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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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한 시에나를 느끼기에 팔리오 축제의 열기는 너무 뜨거웠으며 이는 주차자리를 비롯해 느긋하고 편안해야 할 여유를 모두 빼앗았다. 다행히 축제에 대한 유쾌한 망나니 말들과의 추억이 있어 아쉽지는 않았다. 피렌체를 가면서도 난 '피렌자'라고 읽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지명이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 유명한 피렌체였고 네델란드 캠퍼 루드와 많은 여행객이 강력하게 추천한 바로 그 '플로랑스'였다. 몰랐다. 나의 무지함이여!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그럼에도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글을 읽으며 '과연 어떻길래...'란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와 약 1km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물론 한 번에 한 것은 아니고 목적지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길 반복한 후 힘들게 주차한 것이었다. 관광하고 싶은 시간만큼 돈을 내고 영수증을 차 안쪽 유리에 보이도록 두면 견인을 하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남편은 주머니에 동전이 2시간 어치 밖에 없었고 또 다른 차들도 이미 시간을 넘겼으나 온전하게 있으니 늦게 돌아오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맑고 진한 햇빛을 받으며 다리를 건너갔다.


 아르노강을 건너가 길을 잃었다.
아르노강을 건너가 길을 잃었다.이성애

메디치 가문에서 피렌체시가 외부로 작품을 반출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기증한 것들이 있다는 우피치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6, 7층 건물들의 간격은 매우 좁았다. 그랬기에 건물 사이로 난 골목으로 햇빛을 피해 걸어 다닐 수 있어 7월의 여행자에겐 더없이 좋았다.

여행 책을 가져오지 않아 갈래길 앞에서 잠시 멈췄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단발머리의 중년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느닷없는 나의 도움 요청에 음악 감상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우피치'란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그 여성과 시에스타를 위해 가게 문을 내리던 현지인까지 그것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다 지도 한 장 없는 나를 위해 그녀는 가방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천천히 지도를 펴는 그녀를 도와주려고 낚아채려는 순간 그녀는 '잠깐 기다려봐, 천천히 펴야지'란 액션으로 아주 천천히 지도를 폈다.

어느 곳엘 가든 반나절이 못 돼 지도가 꼬질꼬질, 꼬깃꼬깃하게 만드는 내 손이 나쁜 손이라면 그녀의 손은 정말 착한 손이었다. 속도만 조금 늦춰도 고상해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눈은 지도에 꽂은 채 입으론 '우'자로 시작하는 뭔가를 계속 되뇌고 있을 때 순간 눈에 알파벳 'U'로 시작하는 우피치 미술관이 들어왔다. 내가 이것이라며 반가워 손으로 가리키자 그녀는 '우피치'라고 발음하고 현지인은 '우피찌'라고 발음했다. 그곳에 간다는 그녀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시원한 그늘을 찾아 간간이 들어오는 자동차를  피해 걸어 올라갔다.

일단 배 속을 든든히 한 후 기분 좋게 다비드와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격이 적당해 뵈는 길가 식당에 앉았다. 난 피자, 아이들은 애플파이 같은 빵, 남편은 샌드위치를 골랐다. 관광지 물가가 비싸기에 우린 돈을 아낄 요량으로 좀 저렴한 메뉴를 골랐다. 아이들이 애플파이를 먹다 내려놓고는 내 피자에 입맛을 다시기에 좀 맛보라고 주었더니 아예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 직사각형 작은 피자 하나를 시켜주었다. 그곳은 어느 호텔 앞이라 호텔을 드나드는 여행객, 시중드는 벨보이, 택시 기사를 구경하며 비교적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가 그늘에 섰고 계산을 하던 남편이 직원과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다 돈을 낸다. 그리고 화장실로 발길을 돌리는가 싶더니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은 자리에 앉아 먹으면 표시된 음식 가격의 2배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탈리아. 너 어쩜 좋니?"

가격표 옆에 그것을 제대로 공지 하든가 어쩌든가 하지. 남편의 반응에 무덤덤한 종업원을 보니 '약간의 불미스런 마찰! 그러나 두 번 보지 않을 관광객! 무엇보다 두 배의 마진!'을 구호로 다년간 가게를 운영해 온 듯하다. 기분이 언짢아 화장실 사용도 안 한 남편은 여러모로 심신이 묵직해 보인다.


"그런 영업방식을 하는 이탈리아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해!"

친퀜테레 도보 여행에서 안일한 인포메이션 직원의 안내로 허탕을 크게 친 후 얻게 된 불신과 업신여김의 마음을 함께 얹어 열을 냈다. 입에서 불이 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 부흥기의 유물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학교 다닐 때 '르네상스'는 '인문 문예 부흥' 비슷하게 외웠던 것 같다. 사실 그때 외운 지식은 내재적 지식이 아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이해했던 외재적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점점 '신', '종교', '인간', '사회' 등을 주제로 생각을 하면서부터 르네상스 시기가 얼마나 인간에게 달콤한 시간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나 짜릿한 전환점이었던가를.

그랬기에 골목의 끝에서 그늘이 나를 비교적 넓은 광장으로 등 떠밀어 놓았을 때도, 확 불어난 관광객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을 때에도 눈에 들어온 많은 조각품들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나를 닮은, 나의 신체 크기와 비슷한 작품이 '인간'을 대표해서 우리보다 한 길, 또는 훨씬 높은 곳에서 많은 이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역시나 책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줄을 서는 것은 거의 100%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은 옳았다.

줄은 길었고 우피치 미술관을 보기 위해 그 정도 줄을 서야 함은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지불한 주차 시간이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왕 배짱을 부렸으면 그냥 갈 때까지 가 봐도 좋겠단 생각을 해보지만 문제는 스페인에서 '견인의 추억'이 있는 우린 줄어드는 줄을 보며 찝찝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우피치 미술관 줄의 중간에서 이탈해 주차장으로 서둘러 돌아오고 있었다.

 어린 자녀들과의 여행이라면 때론 발길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오늘처럼.
어린 자녀들과의 여행이라면 때론 발길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오늘처럼.이성애

그때 우리 곁을 지나던 누군가 우릴 아는 척 하기에 보니 길 초입에서 도움 받았던 중년여성이다. 여전히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다. 그냥 주차 얘기하기가 복잡해 "줄이 길어 되돌아간다"고 하자 "나는 예약 했어" 하신다. 예약한 행위에 대해 약간의 부러움과 준비된 관람자로 인정해주는 작업을 속히 끝내고 계속 걸었다. 남편은 좀 초조한 모양인지 현을 데리고 먼저 갈 테니 나는 쭈를 데리고 좀 천천히 오란다.

쭈와 함께 되돌아오고 있는데 아까 우리가 헷갈렸던 지점에서 동양인 여자 두 명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난 급했고 나도 모르게 우피치 및 주요 박물관의 방향을 가리키며 한국말로 "쭈욱"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국인 같지 않았던 한 여자가 "한국인이세요?" 하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동행자에게 "티본 스테이크?" 한다. 그렇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우피치 미술관도 뭣도 아닌 어느 여행 블로그에 올라와 있을 '추천 티본 스테이크 맛있게 하는  집'이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내내 그녀들이 뭔가를 찾는 모습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외치기까지의 장면이 계속 생각나 웃었다. 다행히 차는 견인되지 않고 뜨끈하게 찜질을 잘 하고 있었다. 남편은 10년 전 배낭여행에서 겪었던 '핫'하고 '피곤'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런지 피렌체를 속히 떠나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어 보였으나 난 피렌체란 세계의 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줄만 서다 가는 게 못내 아쉽고 여행기로 흔적을 남기기조차 부끄럽다. 이번 여행 기간 중 또 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곳은 아직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런 곳이 생겼다.

피 렌 체.

꽃중년인 50살이 되면, 알맞은 날씨를 택해, 인터넷 예약을 꼭 한 후, 티본 스테이크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우피찌 미술관을 볼 것이다.

천 천 히.
그 녀 처 럼.

 내 나이 50살이 되면 과연 올 수 있을까? 천천히 보고 싶다.
내 나이 50살이 되면 과연 올 수 있을까? 천천히 보고 싶다. 이성애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리씨네 여행 #맞벌이 가족여행 #유럽캠핑 #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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