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작품 <욕조가 놓인 방>은 사랑과 죽음 사이에 놓은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낸다.
작가정신
<욕조가 놓인 방>의 주인공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디는 직장인이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싫어하지만 헤어지지도 못하는 남자다. 또한 먼 타국의 땅에서 스치듯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여인은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고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인에 대한 묘사는 작품 속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남편과 아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후, 그녀는 불완전한 삶을 완전한 죽음으로 갈음하려는 미학적 의지에 시달리고 있다."주인공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여인과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는 사랑을 원하지만 여인은 물과 함께 끊임없이 죽음을 형상화한다. 이승우는 바슐라의 말을 인용해 "죽음은 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소설 제목에 '욕조'가 들어가 있듯이, 여인은 자신의 방 안에 욕조를 가져다 놓고 끊임없이 침잠한다. 물은 모든 것을 정화하고 흘러가게 한다.
먼 타국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인은 서로를 연민한다. 우연은 긍정적이다. 이승우는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해 사랑은 우연을 얹으려는 의지라고 밝혔다. 우연의 중첩은 만남을 위한 구실이다. 하지만 그 연민은 사실 자신의 애처로움을 잊으려는 투사(投射)다. 다시 말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돌려 버리는 것이다. 자기 정당화이다.
연민은 결국 자기 정당화를 위한 투사사랑할 때는 세상이 압축된다. 두 사람만 존재하고 시공간은 쪼그라든다. 이승우는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진공 상태의 사랑 이야기는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애매모호하고, 남자에겐 숨 막힌다. 남자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몸을 섞지만 물로 형상화 한 여인을 제대로 안지 못한다. 여인은 죽음을 등에 업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집을, 여인을 떠난다. 하지만 일상은 여전히 지루하기 때문에 그는 꽤 시간이 지나 돌아온다. 여인의 집에 두고 온 물건들을 핑계 삼아 다시 욕조가 놓인 방으로 들어간다. 여인은 집에 없지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제, 주인공은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깨닫는다. 사랑과 죽음 사이에 놓은 후에야 말이다.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문학평론가 정여율은 '문명화된 아담과 신비화된 이브, 그 비극적 마주침'이라는 작품설명에서 "가장 낯선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으로서의 사랑은, '대상 없이' 성취된다는 기묘한 역설"이라고 적었다. 떠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일깨우듯, 사랑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야 나를 마주하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손을 꼭 쥐면 그 속엔 아무 것도 없지만 손을 펴면 온 세상이 그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우린 언제 사랑을 시작했을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신하겠는데, 그 시점은 언제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우연한 만남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게 사랑의 형태다. 우리도 대상이 사라져야만 그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을까.
다음엔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는 <식물들의 사생활>(2003, 문학동네)을 다뤄보고자 한다.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지음,
작가정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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