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맞대결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 참석해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농심배 국가대항전 최종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중국의 커제 9단에게 불계패로 지고 말았다. 많은 바둑팬들이 이세돌의 승리를, 특히 이번판의 승리를 원했을 것이다. 한중일 3개국이 5명씩 출전하는 방식에서 한국의 최종주자로 나와 3연승을 거두어 최종대국까지 끌고 간 김에 4연승으로 마무리 짓기를 바라기도 했고, 9일부터 열릴 알파고와 대결 전 마지막 공식대국이었기에 기분 좋은 승리를 기대했을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최근 이세돌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커제 9단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이번 패배로 상대전적이 2승 8패가 되었으니 이제는 정말 천적이라고 불려도 할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이세돌 9단은 커제에게 약할까?
중국 기사를 상대로 심리전에 능한 이세돌한 때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한국인'이라는 글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중국 바둑을 무시하는 듯한 인터뷰를 종종하는 이세돌 9단이 실전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이 중국 언론과 중국 기사를 상대로 보이는 태도는 일종의 심리전의 성격이 있다.
바둑의 수 중에는 기세(氣勢)상 두는 수가 있다. 정확한 수읽기나 객관적인 형세판단에 근거한 수와 달리 기세상 두는 수는 상대를 도발하는 성격이 있다. 즉, 상대방의 심리적인 균형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노리는 수로, 이세돌 9단의 바둑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세상 두는 수가 오만한 인터뷰에 의해 그 효과가 증폭되는 것 같다. 대국 전 인터뷰에서도 중국 바둑을 무시하는 말을 했는데, 실전에서도 상대 대국자를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수(무지막지하게 끊거나, 대마를 통째로 잡으러 가거나 등등)를 두면, 상대방은 흥분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순간에서 차분하게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다. 그런데 실력이 종이 한장 차이인 고수들의 바둑에서 심리적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이세돌 9단의 도발적인 인터뷰는 실전 대국에서의 도발적인 수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압도적인 대 중국기사 승률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세돌을 상대로 심리전에 능한 커제
그런데, 이세돌 9단과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기사가 나타났다. 바로 커제 9단이다. 올해 초 몽합배 결승 직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커제 9단은 이세돌 9단이 자기를 이길 확률이 5%가 안된다는 오만한 발언을 했다. 이세돌 9단은 어떻게든 그런 커제를 꺾고 싶었겠지만 안타깝게도 2대3으로 지고 말았다.
이번 농심배 최종국에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반에 커제 9단은 거대한 세력을 쌓았다. 단단한 세력을 만들었지만 그렇게 두기보다는 최대한 모양을 크게 하면서 '이래도 안 들어올래'라고 말하는 듯 했다. 개그맨 안영미가 '드루와 드루와' 하는 듯한 느낌으로 행마를 이어갔다.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는 바둑 격언이 있지만 이세돌 9단은 참지 않고 과감하게 침투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설자도 답답해 했다. 물론, 침투한 돌은 몇 번의 묘수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세돌 9단은 심리적 안정을 잃은 듯 했다. 초읽기에 몰린 탓도 있겠으나 대국 운영이 차분하다기보다는 흥분상태인 것 같았다. 결국, '묘수 세번이면 바둑 진다'는 격언이 있듯이, 형세는 반전되지 못했다.
알파고는 기세상 두는 수를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