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간들을 다스리는 법 '한비자'

법과 술을 통한 통치

등록 2016.03.14 14:57수정 2016.03.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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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인간들을 다스리는 법 <한비자>
법과 술로 백성과 신하를 조종하라

다음은 어떤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부부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내: 우리 부부에게 아무 사고도 없게 해주시고, 베 100필만 주십시오. 
남편: 너무 적지 않아? 더 많이 달라고 하는게 어때?

아마 이 책이 다른 고전이었다면 아내는 "우리 분수에 맞는 정도를 비는 게 좋지."라고 말하거나 "갑자기 많이 버는 복은 피하는게 나아."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혹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부부를 비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 그것보다 많으면 당신이 그걸로 첩을 살 거 아냐.

7개의 나라가 할거하여 학살전을 펼치던 중국의 전국시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집중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한비자>다.


혼란한 시대의 약한 국가에서 법과 술의 통치를 주장한 한비자

원래 고대 중국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중국의 봉건제도는 주군과 봉신이 서로 의무를 갖는 서양의 봉건제와 달리 왕실의 일족들을 지방에 파견하여 왕으로 삼는 제도였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 친척들끼리 서로 멀어져서 소원해졌고,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자 각 국가들은 주나라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춘추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03년)이다. 춘추시대에는 명목상의 주군인 천자가 있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주나라의 힘을 우습게 보고 주변 국가를 자기 맘대로 공격하고 명령하던 시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나라를 직접 공격하거나 왕을 일부러 모욕하는 등의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명분없는 외교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점점 국가간의 전쟁과 멸망이 반복되자, 이제는 명분이나 예의고 뭐고 그런거없이 서로 하극상을 일으키고 필요없는 인간은 쳐 죽이는 혼란 상태로 나아간다. 이것이 전국시대(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이다. 전국시대 동안 수천, 수백개의 나라가 전쟁으로 멸망하고 마침내 7개의 나라가 남으니, 이를 전국 7웅(진·초·제·조·위·한·연나라)이라 한다.

이중 한(韓)나라는 진(晉)나라(진시황의 秦나라와는 다른 나라)의 신하였던 한씨들이 위, 조씨와 함께 진나라를 쪼개 나눠 갖은 것에서 유래했다. 한나라의 등장 자체가 신하가 주군을 짓밟는 하극상이자 전국시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는 국토도 작은데 이웃 나라들과 국경도 많이 접하고 있어 툭하면 전쟁으로 핍박당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중원에 진출하는 입구 앞에 위치하였기에 진나라는 전쟁으로 땅을 뺏기도 하고 협박해서 뺏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했다. 결국 한나라는 전국시대 후반기 최약체가 되었다. 아직 한비자가 태어났던 시점에서 한나라는 망하진 않았지만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멸망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이 책의 저자 한비자는 이러한 혼란기에 전국시대 한나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비로, 한나라 공실의 일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한나라의 약소국으로서의 비참한 운명을 슬프게 여기고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골몰했다. 그는 성악설의 주창자인 순자밑에서 학문을 배웠다. 순자는 유학자로,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본 맹자, 성무성악설을 주장한 고자와는 달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며 교육을 통해 깨우쳐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런 스승의 영향을 받아 한비자도 자신만의 학설을 주장하게 된다.

한비자는 군주는 법과 술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법은 모든 백성들, 힘을 가진 중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공평한 법이다. 법은 부당함과 합당함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벌로 고통을 받아도 합당하다면 옳은 것이며, 한명이 벌을 받아도 부당하면 잘못된 일이다. 술은 신하들을 다스리는 술책이다. 신하들의 이익은 국가나 군주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반드시 신하는 군주의 틈을 노리고 이득을 취하게 된다. 군주는 이러한 신하의 모략과 권세를 잘 이용하고 자신의 술로 조정해야한다. 술은 신하를 다스리고 궤계를 통해 군주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계책이다. 전국4군자나 명재상같은 이들은 군주의 권위를 훔치는 중신들이니 필요가 없다. 한비자의 사상에서 필요한 것은 곧은 중신이 아니라 군주의 명에 따르는 실무형 관료이다. 군주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흡사 마키아벨리를 연상하게 한다.

한비자는 법과 술을 이용한 통치가 아닌 모든 계책을 비판한다. 현명함을 통혜 다스리는 것은 법치처럼 촘촘하지 못하고, 의와 예를 통해서 다스리는 것은 가까운 문제는 해결도 못하면서 똑똑한 척한다고 비판한다. 애당초 그는 인간의 도덕성이 아닌 이해관계를 가치관에 중점에 두고 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정치에서 도덕성을 배제하지 않은 모든 학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사상을 크게 법가에 속한다고 본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법가, 한비자의 비극적인 최후

한비자의 사상은 살아 생전 군주에게 채택되지 못했다. 관중과 같은 현명한 이들도 포숙아같은 사람에 의해 추천되었는데, 법가 사상가는 그럴 수가 없다. 군주 가까운 곳에 있는 총신들과 막대한 세력을 가진 중신들도 법에 따라 공평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남이 등용하자고 주장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 책 전반에는 군주에게 필요한 계책을 알지만 군주에게 쓰이지 못하는 한비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한비자는 최후도 비참했다. 한비자와 함게 순자밑에서 배운 동문인 이사는 훗날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엄청난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진나라의 침공을 두려워한 한나라 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외교관으로 보내나, 오히려 진시황은 한비자를 억류해버리고 만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몹시 감명받았기에 그를 곁에 두고자 한 것이다. 승상 이사는 한비자가 자신의 총애를 빼앗을까봐 한비자를 찾아가 친구라서 말해주는 건데 어차피 처형당하기 직전의 상황이니, 차라리 자살을 하라고 권하고, 한비자는 자살하고 만다. 결국 전국시대는 진시황과 이사의 천하통일로 끝난다.

한비자의 사상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그는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형 법치체제를 통해 강력한 나라를 구축하려 했고, 인간이 가진 악한 마음을 똑바로 마주보고 대처하려 했다. 그러나 법치는 악용되어 사람들을 옭아맬 가능성이 충분했고 인간의 교화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역사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첨부파일 hanbi.jpg
#한비자 #법가 #전국시대 #진나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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