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선생이 될 수 있을까

[로또교실14]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며 내 밥그릇을 걱정하다

등록 2016.03.14 08:10수정 2020.01.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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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인공지능.이준수
 



"이세돌이 5:0으로 이긴다. 백프로!"



교무실은 알파고와 이세돌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학교에는 바둑을 취미로 하는 교사들이 꽤 많은데 대부분 이세돌 9단의 우세를 점쳤다. 대마, 단수, 계가, 포석... 대화를 알아듣기 힘들었다. 바둑에 문외한인 터라 이세돌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봤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 그의 전적과 대회 경력을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인간계 최강 바둑기사는 알파고에게 무너졌다. 제3국 이후 감동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5판 3승제 규칙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패배했다.




'지금이라도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 온나라의 관심이 모이는 모습을 보니 욕심이 났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소프트웨어 교육 사업에는 각종 교사 연수와 교재 집필 작업이 포함된다. 연수 진행비나 교재 집필 원고료는 꽤 짭짤해서 어떤 분야든지 강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대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로봇이 내가 가르치는 일을 대신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알파고는 사람처럼 바둑을 두었다.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진들은 알파고의 묘수가 나올 때마다 기풍이 아름답니, 변칙적이니, 신의 한 수이니 같은 수사를 연발하였다. 알파고의 정체가 알고리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격체를 대하듯 반응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인간이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사람과 비슷한 대상에게 인격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바둑용어는 일상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그래서 인간의 패배가 더 슬픈지도 모르겠다.
바둑용어는 일상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그래서 인간의 패배가 더 슬픈지도 모르겠다.이준수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듯 기술의 진보는 필연이다



"얘야 괜찮니?"  



로봇 교사는 아이가 넘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와 다친 어린이를 부축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무사히 치료를 마친 후 학부모에게 자녀의 부상 경위 및 대처 과정을 설명하고 너무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만하면 꽤 쓸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로봇 교사가 특정 계층의 지식과 가치를 대변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치지향적이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 교육부와 쿠바의 교육부가 내거는 목표와 지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정 교과서 도입 과정을 보더라도 교육내용을 두고 얼마나 많은 이익집단과 관점들이 대립하는지 알 수 있다. 로봇 교사의 지도 내용, 가르치는 방식, 태도를 결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을 가진 지배집단의 억압과 강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로봇의 인권을 인정하기 어렵다. 로봇은 생명이 없는 인간의 도구이다. 이마를 짚어주고 자상하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는 정교한 기계에게 학생들은 따스하고 친밀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때로는 불친절한 인간 선생님보다 로봇 선생님을 더 사랑하여 도구 이상의 권리를 부여하려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학생과 로봇 교사 간의 인격 관계 형성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용자가 희망하면 로봇에게 인간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대우해줘야 하는가?



셋째, 로봇의 오류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로봇은 완벽하지 않다. 무인 자동차의 '터널 딜레마'처럼 인공지능 또한 각종 갈등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알파고는 제4국에서 미리 학습되지 않은 유형의 수가 나오자 버그에 가까운 수를 두며 자멸의 길을 걸었다. 만일 학교 현장에서 기계적 결함으로 사고가 나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교육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며 교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다른 분야보다 더 엄격한 윤리성이 요구된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무생물체에게 교육행위를 맡길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세돌-알파고 4국 78수. 이후 알파고는 자충수를 둔다. 인공지능의 허점이다.
이세돌-알파고 4국 78수. 이후 알파고는 자충수를 둔다. 인공지능의 허점이다.이준수
 





직장에서 짤리고 싶지 않은 교사의 넋두리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세돌 9단은 제3대국에서 패한 후 겸손하게 인터뷰하였다.



"알파고가 아직 신의 경지는 아니라고 본다. 이세돌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세돌 9단이 아무리 개인적 차원의 좌절이라 말해도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자신의 패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바둑은 오목, 장기, 체스가 컴퓨터에게 무릎 꿇고 남은 마지막 보루였다. 더불어 직관력과 창의력의 상징이었다.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는 문제 앞에서 모든 인간은 처절해진다. 우리는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진화를 거부할 수 없다. 옷감 짜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망치로 엔진을 두들겨 부순 산업혁명 시대의 러다이트 운동은 애잔한 해프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밤 10시가 넘어서 울려대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카카오톡 알람을 들으며 생각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늘 문화와 제도의 속도를 뛰어넘는다. 카카오톡처럼 단순한 구조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도 부작용이 있다. 하물며 인간 수준의 지능과 자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은 어떻겠는가?



알파고가 선생이 되기에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 보인다.
 
#알파고 #이세돌 #인공지능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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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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