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샐러드를 먹는 꽃차남과 시후. 우리는 간식인 줄 알고 먹었다. 탕수육이랑 같이 먹으려고 만들어놓은 줄은 정말 몰랐다.ㅠㅠ
배지영
마트에 다녀온 제규는 망연자실에 어이상실. 소리칠 기운마저 없는지 "누가 먹으라고 했냐고?" 읊조리듯 말했다. 꽃차남과 시후는 눈치를 보지 않았다. 저희들끼리 싸움놀이를 하면서 "어차피 형이 우리 먹으라고 요리한 거잖아"라며 불난 제규 마음에 부채질을 했다. 제규는 끓는 물에 식초, 간장, 굴 소스, 전분, 야채를 넣어서 탕수육 소스를 만들었다. 다 만든 쇠고기 탕수육도 밥상에 올렸다. 쾅!
밤바람은 차다. 제규는 점퍼도 입지 않고서 집을 나갔다. 현관문도 역시 세게 닫았다. 나는 휴대전화까지 두고 간 제규한테 온 신경이 쏠렸다. 탕수육이 식어서 맛없어지는 건 제규가 바라는 게 아닐 거다. 그래서 시후와 꽃차남한테 밥을 먹였다. 시후는 탕수육에 소스 찍어먹는 게 맛있다고 했고, 꽃차남은 탕수육 그대로 먹었다.
"진짜 말이 안 나왔어요. 과일 샐러드는 탕수육이랑 같이 상에 올리려고 만든 거예요. 뭔가 중국풍이 나잖아요. 애들이 그걸 먼저 먹어버린 거야. 힘이 빠져서 밥 차려놓고 그냥 나왔어요. 걷다보니까 엄마랑 이모랑 같이 간 식당 앞이더라고요. 걸으면서 화가 풀렸는데 식당에서 밥 먹는 손님들 보니까 집에 오고 싶었어요."
제규가 없는 밤. 나는 제규 친구 수민이와 주형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평일이니까 당연히 안 만났다고 했다. 초조한 나는 남편한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편은 "앞으로는 무조건 물어보고 먹어"라고 했다. 제규는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이 먼저 샐러드 먹은 것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집은 요즘 '모자 가족'. 남편이 없다. 출퇴근이 따로 없는 일을 하는 그는 바쁘다. 요새는 무척 바쁘다. 새벽에 들어와서 아침에 나간다. 제규가 요리를 하기 전에는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반찬하고 국을 끓였다. 이제는 몇 시간이라도 자고 나간다. 남편이 걸려하는 건 하나, 청소. 일요일마다 남편이 하던 대청소를 제규가 알아서 했다. 지난 일요일에.
"밥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청소는 아빠 바쁘니까 내가 대신한 거예요. 아빠처럼 식탁 의자도 다 올리고 쓸고 닦았어요. 근데 엄마는 동생 울렸다고 성질만 냈잖아요. 나는 뭐 하지도 않았는데 걔가 그냥 짜증내고 운 거라고요. 나는 그게 너무 서러웠어요. 엄마가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아들이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