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au bouquet de violettes)>, 에드아르 마네(1872), 오르세 미술관.
김윤주
'흑색 의복'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파리지엔느로 인상파 최초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를 꼽을 수 있겠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부채를 들고 있는 베르트 모리조>, <부채를 든 모리조의 초상> 등 1870년대 초반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여러 그림에서 모리조는 까만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는 부친상을 당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리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최고의 작품이다.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온갖 구설수를 몰고 다니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추앙받으며 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마네의 그 많은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 그림이다.
오르세 미술관 5층 인상주의 갤러리에서 까만 드레스의 모리조를 처음 만난 순간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세련되고 멋진 까만 모자와 제비꽃 장식을 한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며 앙다문 입술이 어찌나 생동감이 넘치던지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앞에 앉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분주히 붓을 놀리고 있을 화가 마네의 열정적인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파리에서 모델이라 하면 한 미술품과 같이 존경을 받고 (...) 모두 그림에 상식이 풍부하여 화가에게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자기 마음에 드는 화가가 있고 또 전도가 보이는 화가가 있다면 자기 힘껏 그 화가를 도울 뿐 아니라, 모델은 자연 아는 사람이 많아서 사교계에 한 판을 잡는 고로 자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여기저기 소개하여 팔게 한다." - <삼천리> 1932년 나혜석이 묘사한 파리의 화가와 모델에 대한 몇 개의 단상 중 이 글은 특히 베르트 모리조와 에두아르 마네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모리조는 아름답고 이해심 깊은 모델이기 이전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화가였다는 점이다.
모리조는 마네를 만나기 전 이미 살롱전에 풍경화 두 점을 출품해 호평을 받은 바 있고,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의 첫 전시회에 피사로, 드가, 시슬레,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과 함께 당당히 자신의 그림을 걸었던 유일한 여성 화가였다.
이후 1886년까지 여덟 차례 이어진 인상주의 전시회에 딱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번 작품을 전시했을 만큼 창작과 활동에 열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