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표지
섬앤섬
중국에 가기 전, 아니 평생에 걸쳐 그는 서구 지향 일변도의 문단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외려 한문맥적인 전통에 근거해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중국에 대한 관념을 쌓아 올린 아쿠타가와는, 그 근원인 중국에 가게 된 것을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완전하게 즐기고 만끽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본 중국의 실상은 그가 쌓아올린 관념으로서의 중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낯 두꺼운 노파와 낮에 탔던 인력거,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아쿠타가와가 받은 중국의 첫인상이었다. 그들은 초라하고 비참해 보였고 약싹 빠르고 비굴해 보였다. 또한 그가 중국에서 보낸 첫날 밤의 숙소에서 느낀 건 '만족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현대 중국에 무엇이 있는가?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모두 타락해 있지 않나? 특히 예술에 대해서 말하자면 가경과 도광 시기 이후 무엇 하나라도 자랑할 만한 작품이 있나? 게다가 국민은 노소를 불문하고 제 멋대로 태평이다. 물론 젊은 국민 중에는 조금이나마 활력이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라 해도 전 국민의 마음에 울릴 정도로 커다란 정열은 없음이 사실이다. 나는 중국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가 없다." (본문 212p 중에서) 첫인상이 안 좋은 건 괜찮다. 앞으로 나아지면 되니까. 그렇다면 과연 아쿠타가와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나아졌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중국 자체에 대한, 요컨대 자연 풍경이나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인상은 하등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곳을 가도 그가 그리던 중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가 애초에 품어 왔던 중국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기에, 실망을 하면서도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가 만난 위대한 인물들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아쿠타가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층적인 중국 기행
중국을 가기 전과 후의 상호 모순적인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아쿠타가와. 그 혼란의 와중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당시 일본과 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타자가 일본을 보고 느끼는 바를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천평산 백운사 정자 벽의 낙서.
"그 중에는 "여러분! 거기 있는 당신 말입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저 굴욕적인 21개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것과 "개와 일본 놈은 벽에 낙서하지 말 것"이라는 것도 있었다.(그러나 시마쓰 씨는 태연하게 층운파의 하이쿠 제목을 짓고 있었다.)" - 본문 154p 중에서이런 낙서를 마주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신이 동경하는 곳에 와서 자국을 욕하는 낙서를 보는 심경이. 그러면서 함께 간 또 다른 자국민은 태연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란. 자기 분열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그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빡빡한 일정의 여행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또한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는 와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 많은 고생을 한다. 이처럼 그의 생애 최초 중국 여행은 다층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그의 작품 활동과 그의 세상을 보는 눈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책은 아쿠타가와에게 있어서 전환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아쿠타가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 초, 전 세계는 혼란했다. 아시아는 그 혼란의 중심에 있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혼란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여러 의미로 아시아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때 그 시절 일본 최고의 작가가 바라본 혼란의 한가운데는 어땠을까. 처연했을 거다. 헛헛했을 거다. 혼란스러웠을 거다.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곽형덕 옮김,
섬앤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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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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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게 하나도 없었던' 첫 중국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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