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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영희
고성국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철수와영희,2016)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하는데, 이 말하기를 깊이 헤아릴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바쁠 적에는 얼렁뚱땅 말하고 지나가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이야기를 못 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학교를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는 으레 교사 한 사람이 말을 이끕니다. 아무리 한 학급이 작더라도, 스무 아이가 저마다 한 마디씩 1분만 말하더라도 수업 진도를 나갈 수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학교 얼거리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는 내내 거의 입을 다물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고, 어쩌다가 한두 마디를 곁들일 뿐이라는 뜻이며, 교사가 혼자서 신나게 말하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길게 말해야 한다면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알려주기에는 수월해요. 그렇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내처 말하기 때문에 '다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가'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몇몇 아이들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싶은 대목이 나와도 어쨌든 진도를 나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생각,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내 생각, 내 느낌, 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말은 상대의 생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상대의 느낌과 감성을 나의 것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닏. (63쪽)말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성과 정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64쪽)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은 '말을 하는 까닭'을 찬찬히 풀어냅니다. 나 혼자 떠들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밝혀요. 내 마음을 밝히되, 나도 네 마음을 들으려고 말을 한다고 밝혀요. 그러니까 '혼잣말'이 아닌 '이야기'가 되려면,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밝히고 너도 차분히 네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너는 내가 말하는 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네가 말하는 사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상대를 잘 알아야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안다는 것,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81쪽)대화는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90쪽)그러면 우리는 왜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이루려 할까요? 왜 한 사람이 떠드는 얼거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골고루 말하는 얼거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까요? 바로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림을 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함께 보살피고 아끼는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알고 생각을 읽으려고 말을 섞어요. 서로서로 사람됨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길을 찾으려고 말을 나누어요.
함께 느끼려는 이야기이고, 함께 알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서, 함께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