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과 탈북자인 김미화 자유민학부모연합 대표가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에서 뒷돈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등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우성
연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시사저널>과 <JTBC뉴스룸>이 지속적으로 어버이연합과 청와대·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의 유착관계를 보도하고 있는데, 도무지 그 끝이 어디가 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참담한 점이라면, 탈북자들이 일당 2만 원의 유혹에 넘어가 어버이연합이 주도한 '관제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탈북자들이 관제 데모에 나서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돈이라고 본다. 탈북자들의 경제상황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손광주)이 지난 2014년 12월까지 입국한 만15세 이상의 북한이탈주민 2444명(남성 878명, 여성 1566명)을 대상으로 2015년 7월부터 9월 7일까지 약 2개월간 실시한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2011년 49.7%, 2012년 50.0%, 2013년 51.4%, 2014년 53.1%, 2015년 54.6%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실업률은 2011년 12.1%, 2012년 7.5%, 2013년 9.7%, 2014년 6.2%, 2015년 4.8%로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다. 소득 수준을 볼 때, 2015년 북한이탈주민 임금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54.6만원으로 2014년 147.1만원에 비해 약 7만원 상승했다. 일자리의 질을 따져보자. 상용직 취업 비중은 2013년 51.5%, 2014년 54.1%, 2015년 60.5%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표만 놓고 보면 고무적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임금은 일반 남한 국민의 월 평균임금 229만 7천원의 67% 수준에 그친다. 게다가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번 돈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아 늘 목돈이 아쉬운 처지다.
일자리의 질도 문제다. 일용직에 종사하는 탈북자의 비율은 2015년 15.7%다. 다행스럽게도 일용직 종사자 비율이 2013년 20.7%, 2014년 20.4%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 취업률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45%의 탈북자들이 경제활동을 못하는 상태다.
그러나 돈이 탈북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탈북자들을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도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사회 분위기에 대한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 대목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주제는 진보진영의 실패다.
탈북자들이 보수화, 진보진영의 실패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수진영은 '애국' 마케팅으로 탈북자들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진보진영이 탈북자를 끌어안는 데 실패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보진영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2014년 9월 한 일간지를 통해 제기됐다. 당시 <한겨레>는 "진보진영 무관심이 '극우 탈북자' 만든다"는 제목으로 탈북자 강룡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평양의 김형직사범대학을 다니다가 탈북해 한국으로 온 강룡은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딱 오면 뭘 좀 배우려는 욕망이 있어서 각종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간다. 돈이 없으니까 무료로 하는 데 어디 없나 해서 찾아보면 다 보수단체에서 하는 거다. 장학금 주는 데도, 하다못해 교통비 쥐여주는 것도 다 보수단체고 진보 성향 단체는 하나도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듣는 얘기마다, 다 보수적인 내용이니. 나도 처음엔 이 사람들 얘기가 전부구나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빨리 배워야 되겠다. 시간이 지나면 어, 이런 다른 얘기가 있네…. 근데 벌써 여기(보수)에 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저기 가기가 쉽지 않은 거다. 탈북자 자신도 문제가 있지만 탈북자 문제에 무관심한 진보진영의 책임도 있다."수구보수 진영이 사탕발림으로 탈북자를 시위에 동원했다고 성토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에 불과하다. 그보다 수구보수 진영이 탈북자들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아무런 연고 없이 남한으로 온 탓에 외로운 데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탈북자들에게 기댈 곳을 줬다. 게다가 현 정권 들어 존재감을 키운 어버이연합이 멍석을 깔아주니, 탈북자들에게 시위 참여는 애국도 하고 일당도 벌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무작정 진보진영을 무능하다고 탓하려는 의도는 없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진보 시민단체들은 크고 작은 탄압에 시달려 세가 많이 약화됐다. 정부 지원금도 보수단체에 돌아갔을 뿐 진보성향 단체들은 사실상 지원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탈북자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단, 각성은 하자. 무슨 말이냐면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정착을 돕는 일에서 진보진영의 역량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사실 탈북자를 끌어안는 일은 '보수 대 진보'라는 진영 논리를 초월해 우리 사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 특히 진보진영이 이 일에 무관심했고, 어버이연합은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자.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 구성원으로 흡수됐을 때, 어버이연합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진보진영이 탈북자들의 보수화에 일정 수준 책임감이 있다는 인식 하에, 이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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