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개꿈', 쓸데 없는 짓은 아니다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111] 기억력 향상과 학습 활동의 일환, 긍정적 기능 적잖아

등록 2016.05.02 11:17수정 2016.05.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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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개 ⓒ pixabay


'대중없이 어수선하게 꾸는 꿈.' 국어사전은 이른바 '개꿈'을 이렇게 풀이한다. 개꿈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철은 낮 시간 시쳇말로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깜빡 잠에 빠져들기 쉬운 시기이다. 낮잠이나 토막 잠을 잘 때 꾸는 꿈은 십중팔구 개꿈일 가능성이 크다. 깊은 잠이 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질 낮은 수면 중에 꾸는 어수선한 꿈을 왜 개꿈이라고 할까? 똑 부러진 답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두어 가지로 추정은 가능하다. 먼저 우리 말에서 흔히 '개'는 비하 혹은 질이 낮음을 뜻하는 접두사로 통할 때가 많다. '개고생'이라든지, '개밥'이라든지 하는 표현이 그런 예다. 이외에 개꿈이라는 말의 또 다른 출처는 실제로 개들이 꿈꾸는 걸 보고 옛사람들이 그리 불렀을 가능성이다.

개도 꿈을 꿀까? 물론 꾼다. 개는 낮에도 수시로 졸거나 잠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개를 키우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 보면 개가 꿈꾸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개가 자면서 잠꼬대처럼 무슨 소리를 낸다든지 자면서 눈을 굴리는 등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옛사람들도 개가 이처럼 꿈을 꾼다는 걸 알았을 테고, 개가 꾸는 꿈이니 그 꿈을 평가절하했을 여지가 크다. 그러니 인간이 꾼 꿈 가운데 특히 '의미'를 찾기 어렵거나 허황되든 실감나든 줄거리가 전혀 없는 꿈을 일컬어 개꿈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흔히 말하는 개꿈은 허황되든, 실감나든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있는 개가 주역 등으로 등장하는 꿈과는 구별돼야 할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많다. 하루 24시간 중 약 55%, 즉 13시간 안팎을 잔다고 한다. 그러나 개들이 깊이 자는 시간은 6시간 내외에 불과하다. 나머지 예닐곱 시간은 하품을 하며 조는 등의 상태이거나, 잠 가운데서도 흔히 얕은 잠으로 불리는 렘(REM) 수면으로 소비한다.

동물학자들은 최소한 포유동물들은 모두 인간과 마찬가지로 꿈을 꾼다고 말한다. 개의 경우 꿈에 빠져드는 양상은 사람과 매우 흡사하다. 렘 수면을 거쳐 깊은 잠이 찾아오는 등의 사이클도 비슷하고, 렘 수면 시간 동안에는 개들 역시 어수선한 '개꿈'을 꿀 확률이 높다. 생생할 뿐만 아니라 나름 스토리가 있는 꿈들은 개들 역시 렘 수면 이후의 깊은 잠을 잘 때 주로 꾼다.

개꿈이라고 얕잡아 평가하지만, 개꿈 또한 그 나름의 기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개꿈 혹은 개가 꾸는 꿈들도 학습과 기억이라는 두뇌 활동의 연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여긴다. 두뇌는 자는 동안 그저 세상 모르고 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낮 시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저장하고, 두뇌 회로에서 연계시키는 활동을 하는 데 이게 바로 꿈이라는 것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양서류 파충류 등에 비해 두뇌가 뛰어난 거의 모든 포유류들이 렘 수면을 거쳐 깊은 잠에 빠져들고 또 자면서 꿈을 꾼다는 사실은 꿈이 '일장춘몽' 마냥 허망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잠을 충분히 자야 기억력이 향상된다' 든지, '잠이 부족하면 치매가 오기 쉽다'는 등의 얘기는, 꿈이 그 나름의 기능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들이다. 개꿈이라고 평가절하 할 것 없이 이 봄, 잘 수만 있는 상황이라면 개꿈을 꾼다 한들 낮잠을 자는 게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개꿈 #일장춘몽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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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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