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찾아 글쓰기에 대해 묻다

[샨티학교 10대들과 글쓰기 수업하기⑥]

등록 2016.05.16 19:15수정 2016.05.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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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추는 시간 밑바닥이 드러나고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많은 사람 중에 대학시절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 조세인


선생(先生)이라는 존재. 먼저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 그리웠다. 그건 내 삶이 막막하다는 증거였다. 지난 번 밑바닥이 드러난 글을 적고 많이 힘들었다. 떠오르는 대로 묻고, 무슨 답이든 듣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 없는 목요일. 청주로 향했다. 


청주로 가는 길, 나는 국문학과 00학번 조세인이 되었다. 호기심 많은 큰 눈에 질문을 달고 다녔던 나. 세상에 관심이 많았으나, 뭔가 하나 집요하게 파묻혀 공부하지 못했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런 나를 응원하시면서도 가끔 쓴 소리를 하셨던 선생님. 대학시절, 허튼 시간 보내지 말고 제발 공부다운 공부를 하라고, 문학다운 문학을 하라고 하셨다. 정말 문학이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졸업 후 국문과 친구들과 같이 선생님을 만났던 적이 언제였던가.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반이면 되는 거리를 가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늘 지리산에 살고 싶다던 선생님은 시내 한 가운데 살고 계셨다.

복잡한 거리에서 제자를 기다리는 선생님이 저만치 보였다. 오랜만에 선생님 팔짱을 껴본다.

"선생님, 뭐 먹으러 갈까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나는 가난하고, 염치없는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봄, 국문과 선배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혹시 책을 읽어드릴 마음이 있냐고. 제자들은 오래 전부터 선생님의 눈이 되어드렸다. 흔쾌히 하겠다고 했지만 대쪽 같아 보이던 선생님이 무서웠다. 처음 선생님 연구실에서 책을 읽었을 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내가 읽는 게 글인지 글이 나를 읽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밥의 힘이랄까.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출퇴근길을 도와드리며 사람 냄새 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말까지 했다.

"선생님, 행운인 줄 아세요. 저는 캠퍼스에서 남자친구하고도 팔짱끼고 안 다니는데, 선생님 팔짱을 끼고 다니니까요."

그러면 허허~ 웃곤 하셨다.

출근시간부터 퇴근까지 빼곡히 짜여있던 제자들과의 시간. 선생님 연구실에서는 늘 책 읽어주는 제자들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비롯해 몇몇 제자들은 선생님 곁에 머무는 행운을 누렸다. 책이나 논문을 쓰는 것을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한자를 몰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요새 뭐하고 사냐?"

쩌렁쩌렁 강의실을 울리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요즘 대안학교에서 글쓰기 가르치고 있어요."

가르친다는 말을 하고 나니 부끄러웠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배움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데, 즐거운 배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갈비탕 한 그릇을 비우고 상당산성에 올랐다. 대학시절 함께 산책을 하던 학교 뒷산 같았다. 오랜만에 선생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추억과 함께 상당산성을 거닐다가 소나무 숲 벤치에 앉았다. 선생님,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모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해"

- 사실 2009년 선생님 고별강연에 갔었어요. 서사문학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셨죠. 코끝이 찡해서 차마 선생님께 인사를 못하겠더라고요. 강의실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사라졌어요. 다시 강단에 서고 싶으시죠?
"학생들에게 못해준 이야기가 많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는 연구실에 찾아오던 제자들 덕분에 외롭지 않아서 좋았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선생과, 문학을 얘기하던 선생들이 곁에 있었는데 퇴임을 하고 여기에 있으니 답답하지."

- 어떤 수업하실 때가 제일 힘드셨어요?
"창작론 수업할 때가 제일 힘들었지. 아무리 강의를 해도 학생들 글이 좋아지지 않는 거야. 그럴 때마다 회의가 들어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 결국 자신이 사는 대로 글을 적을 수밖에 없는 법. 누군가 자극은 줄 수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몫이라는 거지."

- 모든 후회는 때늦은 법이지만요. 현대소설론이나 현대시론 수업할 때 딴 짓하고 다닌다고 작품을 제대로 못 읽고 수업시간에 들어간 게 후회가 되요. 그때 열심히 했으면 지금 등단이라도 했지 않았을까요. 호호호.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고, 지금 만나지 못한 작가와 작품들이 언젠가 자신의 인생에 비수처럼 꽂힐 날도 오겠지. 그나저나 누구누구는 잘 지내냐?"

-선생님, 제자들이 선생님을 못 찾아뵙는 건요. 사는 게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 뭔가 이루고 떳떳하게 찾아뵙고 싶은 마음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여기에 못 왔을 거예요. 누군가 그랬어요. 정말 좋은 스승은 세월이 지날수록 가슴에 깊이 박힌다고요.
"오호라, 공부 많이 했네. 내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지. 평생 빈민운동가로 살았던 정진동 목사. 그 양반이 죽고 난 후 3년 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 양반이 내게 했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해. 사람이 죽어도 그 사람의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 작가로 등단한 선배들 뒷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선생님은 늘 제게 그러셨어요.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이예요. 언젠가 그 말을 떠올리며 무릎을 치기도 했어요.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영화 '밀양'의 원작소설) 다시 읽어봐. 그 속에 미학이 있어. 요즘 말하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 같은 게 있어. 모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해. 내가 최고의 소설가로 뽑는 강경애 작품도 미학이 있지. 외국 작가 중에는 막심 고리끼와 도스도예프스키를 따라올 작가가 없지."

- 선생님이랑 문학 이야기하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숙제를 잔뜩 내주셔서 마음이 무겁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서 행복하고요. 하지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이거예요. 글쓰기 잘 가르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그건 스스로 터득하는 거야. 날마다 부딪히면서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야."

- 남은 생애 뭐하고 싶으세요?
"신채호, 신채호 평전 적고 죽어야지."

상당산성 숲은 나의 강의실이 되었다. 선생님과 나는 오랫동안 시를, 소설을, 문학을 이야기했다. 스무 살 대학생이 서른여섯 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맴돈다. '스스로 터득하는 거야.' 절망하고 희망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후회는 접으련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잘 기록하고 살아내고 싶을 뿐이다.
#샨티학교 #대안학교 #문학 #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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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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