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진기행김승옥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과 제작노트
정보훈
'순천 - 무진기행 - 진짜 - 술집, 초여름, 자살''순천 - 무진기행 (김승옥) - ① 술집 자살 ② 친구 교사 (여자) ③ 친구들 (어둡던 청년들)' <작가와 함께 대화로 읽는 김승옥, 무진기행>을 통해 작가는 1964년 6월, 순천에서 소설과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것이 글을 쓰는데 바탕이 됐다고 했다.
소설에서 이름만 등장하는 '희'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실제 여성이고, '하인숙' 역시 음대를 졸업하고 순천고의 신입 음악교사로 부임했던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 줄거리 전환의 큰 기폭제를 하는 방죽길에서 마주친 여인의 시체 또한 당시 기억을 빌려온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는 현실에 잘 적응했지만 그곳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중년의 남자는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날의 허무함을 무진에서 위로받고자 했다. 어쩌면 무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도시이자 현실에 쫓겨 달아난 이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누군가 '무진'의 의미에 묻자, 그가 짧게 남긴 한 마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 김승옥 작가를 만나기 전에 작품은 물론, 인터뷰, 대담 등 그와 관련한 많은 자료들을 보았다. 다행인 것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예전 인터뷰에서보다 훨씬 더 말을 잘 했다는 것이다.
직접 글을 쓰는데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작가로서 말을 잃어버린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지금도 끈임 없이 노력하는 노 작가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김승옥 작가가 살아온 시대는 과연 어떠했을까. 그의 작품 속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저는 <서울 1964년 겨울>을 참 좋아합니다..."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펜을 쥔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1950 - 1970 전쟁, 가난!' <서울 1964년 겨울>에는 밤마다 할 일 없이 방황하며 술집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무의미한 농담을 주고받는 작품 속의 '나'. 똑똑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대학원생,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자책하고 자살을 택한 남자가 등장한다. 별다를 것 없는 군상들을 통해 작가는 오래전 비참하고 차가웠던 시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김승옥 말고도 암울한 시대에서 나타나는 절망과 좌절을 표현한 소설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 것은 김승옥 소설이 갖고 있는 뛰어난 감수성과 감각적인 문체,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절망과 이상향을 탁월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